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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ury41
- 작성일
- 2024.11.23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 글쓴이
- 고민지 외 17명
한겨레출판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너 페미냐?"라는 혐오를 낳고 소신 발언하는 여성을 마녀사냥하고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남성 공격자' 내지 '남성 혐오자'로 몰아세운다. 방어막이 약하거나 무관심한 사회에서는 오해와 혐오가 범죄로 표출되는데, 사건화되는 범죄는 그나마 이슈화되어 논쟁이라도 되지만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이슈화도 되지 못하니 더큰 문제가 된다. 이 책은 4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학회에서 기획한 책으로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연구를 공유하며 한국 페미니즘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다.
한국 사회에 '사이버 지옥'이 열리게 된 정치경제적 바탕과 가해자의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다. 흔히들 괴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회피와 무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사이버 지옥'이기 때문이다. 사야크 발렌시아의 '고어 자본주의' 개념을 빌려 디지털 미디어장에서 폭력이 부 축적의 자원이 된 원인을 분석한다. 디지털 고어 자본주의가 형성된 뿌리부터 파헤치는 속시원한 책이다.
고어(폭력과 죽음, 시신 훼손 등)가 상품이 되는 고어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유희를 넘어 '폭력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형적인 예로 '웹하드 카르텔'을 드는데, 양진호에 대해 범죄 수익에 대한 몰수도 추징도 없이 5년 형을 선고했을 뿐이라니 대한민국 법률 어쩔. 다큐멘터리 <사이버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를 언급하며 한국의 고어 남성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아들 엄마로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도소비사회에서 폭력을 자본화하지 않길, 고어 남성성에 가닿지 않길, 사이버 레커 시장과 거리 두길, 그저 아이의 양심과 선택에 맡기기도 불안한 터.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고어 남성성의 특징은 (1)
디지털을 거점으로 (2)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시민권과 자본 축적의 자원으로 삼고 (3)전 지구적 가부장체제의 남성성의 위계 안에서 '알파 메일'에 다다르지 못하는 '베타 메일'로서 주변화된 남성성'을 극복 혹은 전유하기 위해 (4)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를 대상화함으로써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5)이런 양상이 산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33p
'이대남'의 정치세력화, 페미니즘의 정신병화, 남초 커뮤니티의 메갈 색출(소비자로서 집댠행동), 예스컷 캠페인(남성 소비자라는 지위 발견) 등이 '성평등과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적 실천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치'에 대한 논의를 축소하고 위협받게 만든 과정도 살핀다.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SNS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의 고단함과 지침을 '페미니즘 포기'가 아닌 '다른 상상력'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 문제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디지털 행동주의는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되는 중이다. 의제 설정과 주요 사례가 SNS에서부터 출발하였고, 이를 언론이 확산하면서 국회 입법과 관계 부서의 대책 발표가 연일 이어지는 중에 있다. 정책 의제를 만 들어가는 디지털 행동주의의 힘이 다시 한번 발휘된 만큼, 더 나은 사회와 성평등을 위한 실천 양식에 대해 배제적이지 않은, 보다 포용적 상상력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경청하는 윤리가 더욱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138p
"국내에 인공지능에 대한 페미니즘 연구는 아직 많지 않 다. 인공지능에 대한 젠더 관점의 비판적 분석을 시도한 연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페미니즘으로 인공지능을 어 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테면 인공지능 스피커의 여성 목소리, 인공지능의 젠더 편향, 인공지능의 성별화 등 인공지능과 관련한 주요 젠더 이슈들을 개괄하는 선행 연구들이 있으나 기술의 개발 과정에 주목하는 현장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146p
성차별 여성 배제가 IT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가부장적 질서를 거부하고 직책 대신 이름을 부르고 평어를 쓰는 조직에서도 젠더 불평등은 비가시적이고 미묘하게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조직 내부를 탐색하는 일, 불평등과 차별을 알아채고 논쟁하는 여성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자 필요충분 조건이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온라인 강의로 디지털 성범죄,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강의해 주셨던 손희정님의 글이라 반가웠다. 차분하게 쉽게 설명해주시는 목소리 떠올리며 읽으니 끔찍한 고어 남성성 설명도 잘 넘기며 읽었다.
김미현 연구자 덕분에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의 존재와 활동도 알게 되었고, 엄혜진 연구자의 글 '능력주의는 어떻게 구조적 성차별과 공모하는가'를 통해 능력주의의 허상을 경계하게 되었다. 선택에 대해선 개인이 책임을 지되, 불운에 대해서는 제도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 동조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와 세계 사회에서 진행된 역사적 경험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인구와 자원의 확보를 위해서는 성평등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왜, 무엇을 위해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가?''출산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결정권과 자유는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는 출산의 주체인 여성과 남성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와 같은 질문은 출산율 회복과 인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이루어져야 할 물음들이다. 그리고 그 답변의 첫 줄은 '성평등 사회의 실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370p
고어 남성성부터 도구화된 저출생 대책까지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며 페미니즘과 연구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안하는 연구서이다. 열악하고 가혹한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 여성학을 놓지 않고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젠더 문제를 기반으로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런 귀한 연구물을 공유해 주어서 더 감사하다.
허윤, 손희정, 이민주, 김애라, 김수아, 이지은, 임소연, 권현지, 황세원, 노가빈, 고민지, 장인하, 김미현, 김혜경, 엄혜진, 김보영, 김주희, 신경아.
한분한분 호명해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한다. 그대들의 연구가 곧 싸움이자 변화의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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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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