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ㄴ아무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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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아무튼, 스웨터
글쓴이
김현 저
제철소
평균
별점7.6 (5)
흙속에저바람속에
털실이 풀어내는 이야기
<아무튼, 스웨터>를 읽고


"<아무튼, 스웨터>를 가졌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야기꾼입니다."

  올해는 내가 ‘이 책’을 언제 읽었을까? 해마다 찬 바람이 코 끝을 스칠 때면 책장에서 꺼내 읽어왔는데, 그러고보니 어느덧 칠 년이 다 되어간다. 책 안팎에 행해진 것들이 말 그대로 ‘핸드메이드’이다. 글쓴이가 선택한 ‘스웨터’라는 주제를 실뭉치라고 한다면, 그가 펜 혹은 키보드라는 바늘을 놀려 스웨터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서 한 벌의 옷을 지어낸 것처럼 하나의 큰 책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스웨터와 뜨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 뜨개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에게는 왠지 이 책의 자매품과 같은 책 『아무튼, 뜨개』를 추천하며, 나로 하여금 제철마다 서랍장에서 겨울옷을 꺼내는 기분이 들게 스웨터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책표지를 바라본다.
  에메랄드빛 스웨터 한 벌이 그려져 있고, 꼬리표 정보 중에서 ‘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136쪽)’라는 한 문장이 유독 눈길을 끈다. 아무튼 시리즈의 부제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마음에 든다고,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다. 한 해의 첫눈이 내리는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듯이 누군가 어디서 스웨터를 그 해 처음으로 입은 모습을 궁금해하는 일, 그동안 ‘관측’은 일기나 천체의 변화를 살펴보는 정도로만 여겼는데, 저자는 시인답게 특유의 시 감수성으로 스웨터를 관측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이제 책을 펼쳐 보풀이 약간 일어났을지언정 단정하게 스웨터를 차려입은 이들의 얽히고설킨 사연을 풀어내본다.

“어디서 그렇게 거지 누더기 같은 옷을 샀어?” 자주 얘기하던 어머니도 터틀넥 스웨터 앞에서만큼은 늘 “따뜻한 거 잘 샀네.”라고 말했다.(54쪽)

  스웨터는 작가를 자칭타칭 ‘패(션)피(플)’로 꾸며주는 매개체이다. 비록 사서 입은 옷에 대한 어머니의 인정은 인색할 때가 많았지만, 장인이나 기계가 만든 것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자식들을 위해 정성과 시간이라는 씨실과 날실로 손수 뜨개질한 스웨터에 스민 완전한 사랑은 어머니만이 줄 수 있는 것임을 저자와 독자 누구든 모를 리가 없다. 스웨터에는 사랑과 같은 감정을 비롯하여 어느 계절과 어떤 사람 그리고 다양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 즉 서정과 서사가  배어 있다. ‘배추가 달큰해지는’ 겨울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에도 기온에 맞춰 스웨터를 골라 입는 사람을 알게 되거나, 아직 할머니가 아님에도 ‘할머니 쉐타’를 자주 입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보게 된다.
  또한 ‘라플란드 스웨터’를 입은 사람에게선 어린 마음과 더불어 산타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으며, 스웨터를 입은 사람의 기분에 따라 옷깃에 내장된 LED등의 색깔이 변하는 첨단의 ‘무드 스웨터’의 존재도 알게 된다. 이토록 다채로운 스웨터의 세계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옷, 그러니까 입는 일은 먹고 자는 행위와 같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이렇게 묻고 또 답을 내린다. 수많은 옷 가운데 스웨터만큼 인간적인 옷이 있을까, 각기 다른 패턴의 스웨터는 얼마나 서로가 다른 인간임을 알려주는 것인 동시에 누군가의 인간성마저 확인할 수 있는 요소라고.
  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스웨터를 즐겨 입는 사람이지, 스웨터를 전공한 게 아니라서 이 책을 쓰기 위해 스웨터의 종류마다 제각각 품고 있는 서사를 하나씩 공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사물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알아야만 아무튼 시리즈 세계에 동참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스웨터의 물성뿐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음을 새삼 알려준다. 털실의 이름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그의 말이 1부 「ㅇㅇ 스웨터」에서 다양한 스웨터의 종류를, 2부 「스웨터의 ㅇㅇ」에서 스웨터와 연결된 것들을 거쳐 3부 「레아의 스웨터」에 이르러 결코 빈말이 아님을 증명해낸다. 레아의 스웨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아무튼, 스웨터>를 꺼내 입으면서 다시 풀어보도록 하자. 그나저나 내 서랍장 속 진짜 스웨터는 언제부터 꺼내 입으면 좋으려나.

한밤에 외로운 사람들이 그렇게 뜨개질을 하는 이유는 시간 속에서 무념무상에 빠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이야기에 대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이름을 짓고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부르는 일은 얼마나 외롭지 않은 서사인가.(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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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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