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ㄴ아무튼, 서평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4.11.25
아무튼, 할머니
- 글쓴이
- 신승은 저
제철소
다채로운 할머니들의 세계를 위하여
<아무튼, 할머니>를 읽고
아홉 살 아이는 여전히 할머니를 '함미'라고 부른다. ‘할머니’라고 부를 줄 알지만 ‘함미’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아서란다. 언젠가는 자신도 함미가 될 운명을 타고난 아이의 먼 훗날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내게는 어린 나를 몇 년 동안 키워주신 ‘할매’가 있다. 함미든 할매든 뭐라고 불리든 누구나 살면서 할머니라는 존재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인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피아노도 잘 치고···(37쪽)" 옛날 비디오 영상 속에서 저자의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 어쩐지 내 눈과 귀에도 낯설지가 않다. 아이의 함미가 종종 아이에게 노래하듯 건네는 말들이 아닌가. 할머니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진 않았지만, 이제 그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아무튼, 할머니>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살아생전 거친 입담을 자랑하여 늘 엄마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나, 저자에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다정했고 저세상에서도 그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자주 꿈속에 나타나는 할머니 덕분에 그는 다른 할머니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촬영장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수고했다며 포옹하는 노년 여성 배우들에게 진 따스한 빚을 갚겠다고 다짐하거나,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함흥차사 같은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지겹다는 소리를 연신 내뱉다가도 하차할 때는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를 보면서 엉뚱함과 안도감을 느끼거나, 거리에서 스스럼(때로 겁) 없이 남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노년의 유쾌함과 친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무사히 살아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그는 나이 듦보다 날마다 살아남는 일이 더 두렵다고 고백한다. 아줌마로서 겪는 소외와 무시도 많을 텐데 점점 할머니가 되어가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동시대를 사는 뭇 여성들의 안전과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하고 싶은 게 많은 할머니가 되기 위하여 계속 살아 나갈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이미 자신이 바라는 할머니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위, 호박잎, 곰취를 살뜰하게 다듬고 데쳐 먹을 뿐만 아니라, 아직 삼십 대임에도 아침잠도 모자라 새벽잠마저 없어지고 있으며, 친구들이 어디 가는 날이면 잠옷 차림으로 배웅한다. 이런 모습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함미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가 짚어내고 또 바라는 바들을 되새겨 본다. 하나는 ‘할머니’라는 단어와 호칭에 관한 것이다. 사전에서서 ‘부모의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거나 ‘친척이 아닌 늙은 여자를 친근하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뜻풀이하는 할머니가 상대성을 지닌 단어라는 점을 유의해야겠다. 또한 손주나 젊은이가 주체인 반면에 ‘할머니’는 객체적 호칭이자 사회적으로 다수의 기준으로 정하는 관례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할머니를 약자, 환자, 욕쟁이, 손주밖에 모르는 사람 정도로 납작하게 그리는 우리나라의 미디어를 비판하며 결코 한 단어에 다 담아낼 수 없는 존재가 할머니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 단어 너머에 수많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서사가 있음을 기억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나날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역할로 자리매김하기를, 그래서 다양한 할머니의 세계가 인정과 존중을 받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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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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