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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리
- 작성일
- 2024.12.13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글쓴이
- 유홍준 저
창비
내가 이렇게 글쓰기에 열심인 것은 일찍이 두 분에게 받은 영향 때문이다. 한 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으로 그분은 문과생들은 '한 사람의 지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준비하라고 훈도하셨다. 그리고 내가 대학생이던 60년대 후반의 시대적 화두 중 하나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와 현실참여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논쟁이 일어난 것에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그때 나는 참여문학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였고 지식은이 채득한 전문적 지식을 대중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 분은 나하고 동갑내기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고 무엇보다 민주투사였던 채광석으로 그는 "글쟁이의 현장은 원고지이다"라며 집회에 참가하는 것 못지않게 문사로서의 임무를 강조했다. 채광석은 6월항쟁 때 불의의 사고로 나이 30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문화운동 동지로서 그의 다짐은 지금도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유홍준 교수가 글쓰기에 열심인 덕분에 우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걸작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나올 때마다 마지막권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유홍준 교수가 살아있는한 계속될 것이라 믿고 있다. 약간 쉬어가는 타이밍일까. 이번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놓았다. 제목하여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말 제목 그대로 잡문집이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사적 친분이 있는 지인들의 추모사도 들어 있다. 최근 운명을 달리한 김민기를 비롯하여 우리가 이렇게 다 서로 잘 지내는 사이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할 수 있는 그런 지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말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회고담은 마음을 울린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그의 어머니느 좀 더 특별하지 않았나 싶다.
유홍준 교수는 방송에서도 자주 부채를 가지고 나온다. 거기에 그림과 글씨를 써서 출연자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본인이 방송할 내용을 적어서 큐시트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원래부터 그렇게 그림과 글씨가 능한 분인줄 알았지, 매월 마지막 일요일마다 초서를 공부했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모임 이름이 재미있다. '말일파초회'.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초서를 격파하기 위해 모인다는 뜻이란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미 많은 학문이 쌓였어도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나는 지금 뭘하고 있나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1장에서 3장까지가 개인적인 경험과 답사에 관한 이야기라면, 4장과 5장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시대적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4장은 예술가와 함께 라는 제목으로 백남준, 신학철, 오윤, 김지하, 김가진을, 5장은 리영희, 백기완, 신영복, 이애주, 박형선, 홍세화, 김민기가 소개되어 있다.
김지하(1941~2022)를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하고 외면하더라도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그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그의 아우로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연을 끊지 않았다. 개인적인 인연이 아니라 해도 김지하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이자 영웅적인 민주투사였다. 70년대에 그가 7년간 감옥살이를 한 것은 그 자체로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넬슨 만델라의 옥살이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나는 김지하를 변절자로 인식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변절자로 낙인찍혔을 뿐 아니라 그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정치적 처신으로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사람들조차 그의 곁을 떠났다고 유홍준 교수 스스로도 이 책에 적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연을 끊기에 그의 업적은 너무 위대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독재정권에 상처받고 변절자로 낙인찍힌 그의 마지막은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했다고 회고한다.
리영희 선생 하면 대표적인 진보학자로 많은 책을 써냈던 작가이기도 했다. 결국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전환시대의 논리>라든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꽤 유명한 저서로 기억한다. 그런 리영희 선생이 유홍준 교수의 주례였다니. 서울대 미학과 학생과 한양대 문리대 교수가 처음 만난 곳은 바로 서대문구치소 앞이었다고 한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그런 인연은 백기완, 신영복, 이애주, 김민기로 이어진다. 김민기라는 사람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학전소극장에서 한국미술사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던 유홍준 교수는 2023년 문득 김민기의 연락을 받았다. 그 강의기록을 보내주겠다는 문자였다. 두툼한 USB를 받고 의아했던 유교수는 얼마 후 김민기가 암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단다. 아침이슬 등을 작곡한 천재 음악가로, 다양한 장르의 후배를 키워낸 학전소극장의 대표로, 한살림이라는 농민운동의 초대 사무국장으로. 김민기라는 사람은 사는 동안 참 바쁘게 살고 사회에 근간이 되는 사람과 시스템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 말미에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과 몇개의 개인적인 편지, 김지하의 글쓰기 지도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유교수에게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홍준 교수같은 분들이 나이들어가는 것이 많이 아쉽다. 다행히도 아직 책을 여러권 낼 계획을 밝히고 있어 안심했다. <국토박물관 순례>를 두세권 더 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대장정을 마치려고 한단다. 다만 이번엔 진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답사와 문화재 이야기가 아닌 개인 유홍준의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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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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