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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0101
- 작성일
- 2025.1.11
로아
- 글쓴이
- 최정나 저
작가정신
작가정신 작정단 13기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로아는 유기되었다. 내가 방치되었듯." - p15
이 책의 큰 주제는 가정폭력이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가정 내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방임이 또 다른 가해를 낳고, 그 일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남는 것은 때린 사람의 변명과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싶은 자들의 회피뿐이다. 상처 입은 사람의 몸과 합리화, 썩어 문드러져가는 정신뿐이다.
보통 소설을 읽는 이유라고 하면, 간접 체험을 이유로 꼽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100%는 아니지만 글을 통해서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공감을 통해서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며, 점차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수 있다. 어떤 인물의 행동이 꼭 이해되지 않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는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저히 이 책은 그런 공감을 하기가 어렵다. 소설 속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몇 문장만 떼어서 가져온다면 인상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도저히, 이 잔인하고 무서운 악순환의 고리를 안 다음에는 문장들을 곱씹기가 어렵다. 그 정도로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이고 어떻게 보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힘겨움을 주기도 한다.
힘듦을 가중시켰던 것은 엄마인 '기주'의 행동이었는데, 부모라고 말하기에도 입 아플 만큼 소극적이다. 짐짓하는 게 아니라 때리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은을 내버려두고, 도저히 엄마의 힘으로도 컨트롤하기 힘든 성격의 아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못 말리는, 부모도 조절하기 힘든 금쪽이 취급을 해버리고 그냥 손을 놔버린다. 그 행동에 상은이 더 분노하고, 노련하게 이용할 거라는 자각도 없이, 자신의 가해 행동은 잊고 이 모든 게 자식의 성격으로 인한 어미의 고생이 된다. 가족문제로 골몰하는 피해자 역할에 스스로 걸어들어간다.
현실적인 문제를 따져보면 그들도 다 힘듦이 있을 것이다. 기주(엄마)도 혼자 자식들을 키우려고 애썼을 것이고, 상은(첫째)도 폭력을 당하면서 또 어린 나이부터 엄마의 낯선 남자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고 로아는 힘없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에 불과하다. 가족이라는 말로, 사회가 주입한 틀을 이용하여 모두가 괴롭고 고통스럽기만 한 상황을 잘 표현한 소설이었다. 현실이어서 피하고 싶고 내 삶에 노출하고 싶은 글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늘 우리 주위에 벌어지는 일이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 '상은'이 왜 '로아'를 때리는지 설명되는 부분이 읽기 힘들었고 솔직히 싫기도 했다. 하지만 뒤에 김이설 소설가가 쓴 발문에서 힌트를 얻어 다시 읽어보니 '로아' 입장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 초반이라 다 읽었을 즈음에는 기억이 안 나 놓쳐버렸지만 앞 페이지에 힌트가 떡하니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 때문에 나는 네가 되어본다. 언니가 되어 나를 본다. 그리고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 - p13
가해자를 이해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이 폭력이면서도 스스로를 너무 이해하기 급급한 사람의 행동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지 않을까.
글이지만 마치 영상처럼 그려질 듯한 생생감이 있는 책이었다. 첫 페이지에 잔인한 표현이 있으니 관련되어 정신적 외상이 있는 분들은 주의를 해주라는 말이 있는데, 납득이 된다.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읽게 될지 나는 감히 예상도 못 할 것이다.
공감을 영역을 뛰어넘어 소설의 기능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 말고도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어떤 지점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많아지는 글이었다. 이 말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끝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래도 이것이 시작이라고, 이 책을 통해 사람들 마음에 씨앗이 심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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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