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어덜트 소설이 출간되었다. 영어덜트 소설이란 성인과 청소년을 모두 아우르는 장르로, 창비에선 소설Y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박소영의 《스노볼 1·2》와 같은 걸출한 소설을 배출했기에 전부터 굉장히 좋아하는 시리즈였다. 이런 창비 소설Y 시리즈에서 새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최정원의 《허밍》이다.

 

POINT 1. 영화처럼 전개되는 에코 스릴러

가까운 미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서울의 수백만 명이 나무가 되어 버리고 서울은 방벽으로 봉쇄된다. 엄마를 서울에 남기고 이모와 피난을 온 '여운'은 연구소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낯선 메일을 받는다. 서울에 설치한 광역 방역 기기 '우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벽을 넘으라는 것. 고민하던 여운은 높은 보수의 유혹에 방벽을 넘기로 결심하고, 9년간 봉쇄되었던 서울에서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책의 첫 장을 펼친 그 순간부터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흥미로운 소재와 찬란하게 아름답고 음산한 디스토피아가 배경이라고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처럼 눈앞에서 생생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덕분이었다. 9년 동안 봉쇄된 서울로 들어간 여운은 미지의 생물에게 쫓기면서도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여운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독자들로 하여금 여운에 동화되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책으로 봐도 이렇게 긴박한데 영상 매체로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인공지능 로봇 'R'이라는 캐릭터가 한몫했고, 영화화된다면 어떤 배우가 어울릴지 생각하는 것도 즐거웠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이 책이 그냥 스릴러가 아니라 '에코 스릴러'라는 점이다. 표지에는 텅 빈 그네가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뒤로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그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표지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1/3가량 읽고 다시 보니 섬뜩하기 짝이 없다. 그저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나무로 변한 사람이고, 심지어 기괴한 모습으로 나를 쫓아온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섬뜩하지 않을 수 있을까?

POINT 2. 성인과 청소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소설은 두 인물이 축을 이루며 전개된다. 먼저 스무 살의 수습 연구원 여운. 9년 전, 엄마를 서울에 남기고 왔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혹시나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방벽을 넘는다. 그리고 열여덟 살의 정인. 서울이 봉쇄됐을 때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 서울에서 성장했다. 어렸던 꼬마는 어느덧 고등학교를 갈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두 인물은 서울에서 마주하게 된다.

스무 살의 여운과 열여덟 살의 정민. 성인이라고 하기엔 어리고, 어리다고 하기엔 고통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들의 행동과 말은 성인과 청소년의 경계 어디쯤에 있고, 그렇기에 영어덜트 소설에 잘 어울린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그들이 나무를 대하는 태도도 흥미롭다. 정인은 그들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취급하는 반면, 여운은 갈등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운을 탓할 수 없다. 서울 출신이라고 하면 으레 불쌍하게 보는 시선 앞에서 억지로 웃어 보여야 했던 여운은, 충분한 애도의 기간도 갖지 못하고 외부인의 시선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두 인물이지만 우리는 둘 중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타 청소년 소설처럼 '성장'만은 아니다. 여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진정한 기억과 애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여운의 입장이 된다면 우리는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