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리뷰

레몬달
- 작성일
- 2025.2.2
가벼운 점심
- 글쓴이
- 장은진 저
한겨레출판
<가벼운 점심>, <피아노, 피아노>, <하품>, <고전적인 시간>,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파수꾼>.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사계절의 시간과 마주한다. 그 계절 동안 느꼈던 고통, 아픔, 쓸쓸함 그리고 추억과 사랑을 만난다.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반드시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계절'이고 계절이 정해지면 그 계절에 맞게 인물들의 말과 생각이 입혀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부여받은 계절를 닮았다.
봄을 담은 <가벼운 점심>. 아버지는 가출한 지 10년 만에 아들과 마주한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비밀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걸까. 나는 비로소 다가올 봄을 가볍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 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봄의 계절을 배경으로 팍팍한 서울살이 5년 차 원룸 생활자가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피아노를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피아노, 피아노>.
인생은 피아노의 하얀 건반이 아니라 검은 건반 같은 거라고.
<하품>에는 피아니스트인 남자와 세 번의 유산으로 점점 느려지고 게을러지는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의 시선에서 본 아내는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미운 존재인 동시에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움직임이 없고 삶의 활기를 잃어버린 여자의 마음은 무더위로 지친 여름의 계절과 닮았다.
손님도 없고 점심을 마친 뒤라 무료해진 아내는 저속으로 재생되는 동영상처럼 움직임이 한없이 느려진다. 할 일이 있어도 느려지는 판국에 모든 게 없으니 끝없이 느려진다. 요즘은 한번 그러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끝 모르게 느려진다. 저러다 태엽이 다 풀린 인형처럼 어느 순간 멈춰버릴 것만 같다. 그는 불안해진다.
오랫동안 혼자였던 집은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했다. 눅눅한 여름날, 도망치듯 홀로 고향 집에 내려온 그녀 앞에 잊고 있었던 인연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고전적인 시간>.
밤을 새우다 방석 귀퉁이에 머리를 대고 눕고, 이른 시간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지 않고 그대로 하루가 시작되는 일상. 시간의 질서가 깨져서 지키지 않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무중력 같은 나날들. 살다 보니 단조롭지만 엄살스럽지 않은 권태를 스스로 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에는 대학에서 루마니아어를 전공하는 나와 가을의 쓸쓸함을 담은 눈동자를 가진 은경이 등장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외로움이 묻어났던 은경과의 인연은 가을을 닮아 짧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긴 여운으로 남아 가을이 되면 생각이 난다. 그리고 후배로부터 생각하지도 못했던 은경의 소식을 듣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쪽에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자국을 지니고 살아가는 건가. 아니 우리는 결국 모두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에 불과한 걸까. 덩어리는 허상인가.
몸도 마음도 움츠리게 하는 추운 겨울을 담은 <파수꾼>에는 건널목 관리인 강 씨가 등장한다. 그는 사별 후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먹먹해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증상을 가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철로에 뛰어든 사람의 죽음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후 경고금을 듣지 못해 관리원으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곧 건널목은 폐쇄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지막 열차를 떠나보내야만 한다. 어느 날,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처지와 닮은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너도 혼자고..... 나도 혼자니.....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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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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