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 문학

지나고
- 작성일
- 2025.2.23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글쓴이
- 공현진 외 6명
문학동네
뭐랄까.『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맛있는 음식을 코스로 먹는 기분이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진 나는 일주일 혹은 더 넘겨서 한 편씩 읽었다. 읽고 나면 평론가가 이 소설은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라고 알려 주니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신춘문예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던 작가들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등단이라는 산을 넘고 또 다른 산을 열심히 넘고 있는 듯하다. 응원을 보낸다.
「김멜라ㅣ이응 이응」은 수월하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해설을 읽고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해설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공현진ㅣ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은 재밌으면서 따뜻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해도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라는 메시지가 희망으로 다가왔다.(p. 98「공현진ㅣ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위로 같기도 했고. 공현진 작가는 소설을 쓰며 조금 즐거웠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와 나 아닌 누군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정말 그러했다.(p. 103「작가노트ㅣ갑자기 열리고 골몰히 닫히는 세계」)
「김기태ㅣ보편 교양」도 재밌었다. 블랙코미디로 다가왔다.
‘교육은 예전에 끝났어. 그러니까 엿같은 월급이나 내놔.’ (p. 115「김기태ㅣ보편 교양」)
교양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지만, 엿을 찾고 있는 주인공을 어찌 재밌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기태 작가는 굉장히 똑똑하고 치밀해 보인다.「무겁고 높은」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문학에 머물러보기로 했다고 하는데, 계속 머무시길. 기꺼이 그곳에 있고 싶다.(p. 144「작가노트ㅣ보편적인 메모)
「김남숙ㅣ파주」는 소재 때문인지 인물들 때문인지 조금 힘들었다. 시시해서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겁게 느껴진다고 할까.(p. 186「김남숙ㅣ파주」) 김남숙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건 조금씩 시간을 유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p. 190「작가노트ㅣ그런 사람) 끊임없이 쓰셨으면 한다.
「김지연ㅣ반려빚」은 작가의 센스가 돋보였다. 어떻게 빚을 반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설득은 어찌나 잘하는지. 독자도 반려빚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작가상 수상을 운이 좋았다, 라고 생각하는 작가.(p. 233「작가노트ㅣ운칠기삼)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운도 계속 좋기를.
「성해나ㅣ혼모노」가 나에게 대상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이래야지, 이렇게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었다. 천재가 아닐까 싶었는데, 작가노트를 보니 노력도 많이 하는 작가인 듯했다. 잘 흘러가고 계신 듯하다. 더불어 성현아의 평론까지 좋아서 완벽하게 다가왔다. 이 완벽함을 공유하고 싶다.
문수가 대결하려는 대상이 신애기도, 장수 할멈도, 굿판에 모인 사람들도 아닌, 현존하는 자신을 가로막고 침묵하는 불합리하고도 불명확한 세계일 때, 그는 오히려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280쪽) 그 깊은 자유를 신 없이 얻어내는 이 반항하는 인간에게 부조리가 있고, 부조리를 놓치지 않고 마주하는 자가 감내하는 이 대결에 치졸함과 궁색함이 아닌 치열함이 깃든다. 그러므로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하는 짤막한 단어 “소만(小滿)”(275쪽)은 절기의 하나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만물이 자라서 가득차듯이, 한 인간은 노력이 배반한 재능과 사라진 신의 영능, 저물어가는 젊음에 대한 골몰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됨을 자기 기준에 근거하여 인정하며 충만해진다. 자신을 끝없이 내치며 가짜라고 오도하는 세계에 맞서 ‘진짜 가짜’이자 ‘가짜로 불리는 진짜’가 되어간다.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이 참된 가짜를. 아니, 거짓되다 손가락질받는 진짜를. (p. 293「성현아ㅣ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전지영ㅣ언캐니 밸리」는 처음에는 감탄하면서 읽었다. 청한동을 달로 묘사하는 대목도 일품이었다.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곳이었다.(p. 298「전지영ㅣ언캐니 밸리」) 전지영 작가의「쥐」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빈틈(허술해서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비어 놓은 것들이 많았다)이 많아 절로 언캐니해져서 그럴까. 어려웠다.
「심사 경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동시대 한국 소설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펼쳐보아야 한다는 한 독자의 평을 읽은 적이 있다. 젊은작가상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노고는 바로 이 한마디를 위해서 축적되어온 것이 아닐까. 심사위원들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신중하고도 무거운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p. 339「심사 경위」)
이 글에 대한 반전이 있다. 배명훈 소설가의 심사평이다.
수상의 영예를 차지한 작가들의 성취는 모두 훌륭하지만, 직접 참여해본 이 상의 진행 방식에는 의문이 남았다. 창작자에게는 언급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 만큼 언급되지 않는 데서 오는 절망도 가볍지 않다. 그런데 이 상에서 거론하지 않은 작가 중에도 대단한 성취를 이룬 젊은 작가가 적지 않다. 순문학 장르 안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그 많은 작가가 다뤄지지 않는지 의아했다.
어쩌면 이 상은 한국문학이 겪고 있는 가장 치열한 변화를 포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문학상에서 거론되는 일이 거의 없는 작가이니, 이 진단이 공감을 얻지 못한다 해도 더 말을 얹을 자격이나 의무는 없다고 본다. 그저 심사를 맡은 사람의 의무로 한마디를 덧붙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성취를 통해 수상자로 선정된 모든 작가와, 언급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작가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 새해에도 새 글을 시작할 용기가 모두에게 더 자주 찾아들기를 기대한다. (p. 356~ 357「심사평」)
책 뒤 날개에는 제1회부터 제14회까지 수상했던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제15회. 중복 수상한 이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한 명, 두 명, 세 명이 덜 언급되었을 것이다. 가장 치열한 변화는 새로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새 글을 시작할 용기가 ‘모두에게’ 더 자주 찾아들기를 기대하는 배명훈 소설가에게 감사를 보낸다. 용기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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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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