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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iyoon
- 작성일
- 2025.3.16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
- 글쓴이
- 이동호 저
책이라는신화

간절기용 얇은 외투는 사지 말아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요즘은 봄가을이 짧아져 얇은 외투는 얼마 입지 못하니 돈값을 못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동호 저자의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를 읽고 나니 봄가을을 ‘내가 사느라 정신이 팔려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가?’라든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안에는 사계절이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 있다. 농부의 편지 속에 등장하는 여러 나무와 꽃 그리고 농부가 흘리는 땀이 그 증거다.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는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해도 괜찮으며, 자연에 순응하기도 자연을 이용하기도 때로는 자연의 등에 올라탄다는 철학자 같은 농부의 편지이다. 농부의 일터인 논밭, 벌집에서 느끼는 자연의 변화와 그의 마음이 둥그레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편지를 읽고 있으면 같이 농사를 짓는 기분이 들고 내 마음도 함께 둥그레진다. 철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의 일상을 보니 내가 아는 농부들이 떠올라 농번기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안부를 전해보기도 한다.
농부가 씨앗을 심어 열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딘지 우리의 삶과 닮았다. 요즘 들어 시력이 나빠졌음에도 내 얼굴의 주름은 선명하게 보이는 나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번 생은 늙어가는 것이냐며 한탄하는 내 마음에 ‘늙지 않고 익는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훈장으로 탈바꿈하는 시간이 온다’고 위로해준다. 그의 문장이 걱정을 덜어준다.
특히 죽음에 이르는 화두를 ‘주다’로 바꾸어 살려고 한다는 그의 다짐은 내 삶에 인용하고 싶어진다. 다른 이에게 ‘주는 행동’은 부자이거나 마음 그릇이 세숫대야만큼 크지 않아도 누구나 행할 수 있다. 농부는 ‘주다’라는 동사가 붙은 파생어를 꼽아본다. 먹여주다, 입혀주다, 알아주다, 보아주다, 사랑해주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앞으로 익어가는 시간은 진짜 부자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다. 삶의 작은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농부의 편지를 읽고 나면 비슷한 일상이지만 100% 똑같은 일상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봄가을이 짧아져 입지 못하는 간절기 외투를 아쉬워하기보다는 따뜻해지는 봄바람을 느끼고, 어느 날 갑자기 쑥 올라온 풀인지 잡초인지 모를 초록이를 보며 도시의 봄을 즐겨야겠다. 농부가 인용한 일본의 두 줄 시가 가슴에 남아 공유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벚꽃이 왔다고 하길래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방문을 열었더니 저만큼 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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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