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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탱이
- 작성일
- 2025.3.20
편지
- 글쓴이
- 히가시노 게이고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제목 : 편지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편지
- 글쓴이
- 히가시노 게이고 저/권일영 역
-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RHK)
외면할 수도, 포용할 수도 없는 살인자로부터 온 편지


범죄자는 자기만 교도소에 들어가야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자기만 벌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말일세. 자신이 죄를 지으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걸 모든 범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지.
본문 중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그 사건의 잘잘못을 따진다. 사회 제도가 어쩌고 어려서부터 따돌림을 당했느니 모진 학대를 받았느니 하며 별별 이유를 찾기 바쁘다. 이외에서 CCTV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신고 받은 경찰이 적절히(또는 모범에 가깝게 매우 현명하게) 대처했는지, 사고 이후 소방관이 잘 도착했으며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인지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바쁘다. 경찰청장은 제대로 사과를 했는지, 사고가 있을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 골프를 치고 있었는지 술을 먹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처럼 다뤄진다.
그래도 최근에는 인식이 바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내 기사거리를 만드는걸 비판하며 2차 피해를 막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각박해졌다 하고 사회 풍조가 나빠졌다 하지만 분명히 사회는 조금씩이나마 좋은 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 아무 잘못이 없는 가해자 가족의 피해를 다루고 있다. 앞서 얘기한 2차 피해와 전혀 다른 '연좌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법적으로 분명 금지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분명히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가해자가 어려서부터 학대를 받아 비뚤어졌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가족들에게 책임을 일부 전가하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심지어 공직자의 가족이 문제를 저질러도 청문회를 거쳐 사퇴를 해야하는 것이 현재까지 존재하고 대중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경우는 도덕적인 면 외에 가족 명의를 이용해 금전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에 조심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다른 국가들을 한번 보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에서는 사실상 연좌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봐야된다. 북한에서 중범죄를 저지르거나 당에 반하면 가족 단위로 처벌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당간부가 되거나 승진이 막힌다. 일본의 경우는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이 작품도 영화, 드라마화되어 흥행했고 비슷한 주제로 범죄자의 가족을 다룬 영화가 개봉하고 꽤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반면 서양은 개인의 범죄를 개인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경우 형이 살인청부업자이나 이 사실이 그의 커리어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다.
이를 보면 연좌제는 동아시아권에 있는 특별한 문화적 현상이지 않나 생각된다. 유교 문화와 연관이 있나 생각되기도 하고 근원을 따져보면 결국 공동체 사회가 중요했던 농경 사회에서 나온 문화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과거 삼족, 구족을 멸하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 역시도 사회가 발전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줄거리
츠요기는 동생 나오키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절도를 계획한다. 과거 이삿짐센터에서 일했던 그는 일하던 중 허리가 다쳐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이삿짐을 날랐던 집을 도둑질한다.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던 찰나 집안에 할머니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신고를 저지하려다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는 이후 경찰에 체포되어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15년 형을 선고 받는다.
이후 스토리는 나오키의 인생과 형 츠요기의 편지로 극을 이어간다.
고등학생이던 나오키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하였고 생계를 위해 일하던 음식점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찾아와 형이 살인범이란 사실을 밝혀 일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나오키는 재활용 회사에 취직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그곳에서 그는 어느정도 안식을 찾는다. 옆 회사의 여직원 유미코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선물을 사주기도 하지만, 그는 형이 감옥에 있어 점점 밀어낸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친근하게 대해준다.
나오키는 일을 하며 공부를 병행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거기서 친해진 동기생 데라오 유스케의 밴드 공연에 초대 받기도 하고 같이 노래를 불러본 후 그에게 밴드 영입 제안을 받게 된다. 그는 형 핑계를 대며 거절했지만 다른 멤버들까지 동의하여 밴드의 보컬로 참여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지내던 와중에 기획사가 접근을 한다. 대뷔를 얘기하며 멤버들에 대해 조사하더니 나오키의 형 문제로 나오키에게 탈퇴를 권고한다. 이미 피해를 받는 삶이 익숙해진 것일까. 그는 밴드도 다시 나오게 된다.
이후 그는 소개팅을 통해 연애도 하게 된다. 꽤 유복한 집으로, 그녀의 부모님은 그를 탐탁치 않아 한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사촌과 결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나오키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점점 조급해하고 급기야 콘돔에 구멍을 미리 내 임신시키려는 계획까지 구상한다. 그러나 이날 사촌이 찾아오고 그는 나오키의 가족 중 누군가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여러 일들이 겹치며 그는 연인과도 헤어지게 된다.
형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오키는 이제 매 달 오는 형의 편지도 원망스럽다. 그리고 자신까지 차별하는 사회도 너무나 원망스러워한다.
이후 평범한 삶을 살던 나오키의 매장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난다. 정황상 내부인의 소행이었기에 직원들을 모두 조사하던 중 형이 강도살인으로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그게 알려지게 되자 그는 직장에서 한직으로 밀려난다. 이마저도 억울해하던 도중 우연히 회사의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사장은 그에게 이번 인사이동에 대해 묻고, 그 조치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장과 대화 후 나오키는 차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자네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차별당하고 있다고. 교도소에 들어간 건 내가 아닌데,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오키에게 뒤이어 하는 말.
"차별은 당연한 거야."
"당연..... 하다고요?"
"당연하지. 사람들은 대부분 범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하네. 사소한 관계 때문에 이상한 일에 말려들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따라서 범죄자나 범죄자에 가까운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행윌세. 자기방어 본능이라고나 해야 할까?"
...중략...
"범죄자는 그걸 각오해야 해. 자기만 교도소에 들어가면 끝이 나는 문제가 아니야. 자기만 벌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말일세."
본문 중, 사장님과의 대화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과거부터 그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던 유미코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사장에게 나오키에 대해 어필하고 설명해줬다. 심지어 그동안 형의 편지에 대신 답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유미코의 마음을 깨닫고 그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게 된다.
어느날 날치기범에 의해 아내와 딸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날치기범의 부모님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깨닫는다. 정정당당하게만 살면 그만이 아니라 자기만족일 뿐이다.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것마저도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그는 이후 자신의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형에게 편지를 쓴다. 한동안 자신이 아니라 유미코가 쓰고 있던 답장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연을 끊을 거라면서 출소 후에도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너무 안타까운 나오키의 삶에 몰입해서 너무 재밌게 본 작품이다. 과연 내가 나오키라면 어떤 삶을 살고 중간중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 만일 내 주변에 가족이 살인범인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동생을 위해 일을 벌이다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형은 동생이 원망스럽진 않을까? 어떤 삶이 속죄하는 삶일까?
연좌제라는 제도로 시작했지만 인간과 삶에 대한 물음만 가득 남기게 된 정말 좋은 책이다. 역시 이 책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잘 쓴다는걸 깨달았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또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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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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