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서재(수리중)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5.3.22
디아스포라 기행
- 글쓴이
- 서경식 저
돌베개
역사가 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한 사람이 외국의 어느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닐 텐데 그는 왜 항상 불안해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해외 출장을 다니던 시절, 입국 심사대 앞에만 서면 무표정한 담당 직원 때문인지 아니면 비행기에 몸을 실어 몇 시간을 날아와 생긴 피로 때문인지 몰라도 괜스레 낯설음과 긴장감을 느끼곤 했더랬다.
겉보기에 여느 여행객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내면은 스스로 늘 ‘자신은 누구인가’ 묻는 일을 거듭하며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재일조선인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다가 이태 전 겨울에 이 세상에서 (타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일 따위는 없을) 저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서경식 선생이다.
겉보기에 여느 여행객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내면은 스스로 늘 ‘자신은 누구인가’ 묻는 일을 거듭하며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재일조선인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다가 이태 전 겨울에 이 세상에서 (타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일 따위는 없을) 저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서경식 선생이다.
장자는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는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신다"고 했다.(...) 비유하자면, 옛날 강과 호수에 있던 우리의 조상은 식민 지배라는 홍수의 시대에 일본이라고 하는 수레바퀴 흐름 속으로 끌려들어 간 것이다. 큰물이 빠진 후 강호로부터 떨어져 나온 수레바퀴 자국 웅덩이 속에 우리들은 남았다. 물은 지글지글 말라간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붕어가 산소 부족에 허덕이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것과 같다.(44~46쪽)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유대교의 생활 규범과 관습을 이어가며 사는 유대인을 가리켰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이나 거주지를 뜻하기도 한다. 서경식 선생은 '어떠한 연유와 구조에 의해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분열되어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한 불안과 긴장을 강요당하는 경험(42쪽)'이 자신을 비롯하여 재일조선인뿐만 아니라 현대의 다른 디아스포라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런던, 광주, 카셀, 브뤼셀, 오스나브뤼크, 잘츠브르크 등 세계의 도시를 방문해서 곳곳에 남겨진 예술가의 인생과 그들의 미술, 음악, 문학 작품을 톺아보며 디아스포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이 바로 <디아스포라 기행>이다. 그는 책 곳곳에서 그들과의 만남들이 지난날과 오늘날의 자신을 마주하는 일들과 다르지 않음을, 동시에 다가올 나날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같이 밀고 나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영국 런던에 자리한 마르크스 무덤 앞에서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한 많은 철학자와 달리,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64쪽)"라는 마르크스의 글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지난 30년간 격동의 시기를 지내며 비록 몸은 고국에 있지 않았으나 한국 사람들과 같은, 어쩌면 더한 고통을 체험하며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매진한 세월 속에서 자신은 세상의 '바깥'을 맴도는 존재, 곧 이방인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저자가 런던, 광주, 카셀, 브뤼셀, 오스나브뤼크, 잘츠브르크 등 세계의 도시를 방문해서 곳곳에 남겨진 예술가의 인생과 그들의 미술, 음악, 문학 작품을 톺아보며 디아스포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이 바로 <디아스포라 기행>이다. 그는 책 곳곳에서 그들과의 만남들이 지난날과 오늘날의 자신을 마주하는 일들과 다르지 않음을, 동시에 다가올 나날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같이 밀고 나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영국 런던에 자리한 마르크스 무덤 앞에서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한 많은 철학자와 달리,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64쪽)"라는 마르크스의 글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지난 30년간 격동의 시기를 지내며 비록 몸은 고국에 있지 않았으나 한국 사람들과 같은, 어쩌면 더한 고통을 체험하며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매진한 세월 속에서 자신은 세상의 '바깥'을 맴도는 존재, 곧 이방인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다음으로 5.18 민주화 운동의 산실인 한국 '광주'에서는 음악가 윤이상과 그가 작곡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를 떠올린다. 그는 정치권력이 자행한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1967년 독일로 떠난 뒤 죽을 때까지 귀국하지 못했는데, 저자는 "그가 느꼈을 '망향의 심정'을 가늠하긴 어렵지만, 인간의 '망향의 심정'까지도 철저하게 이용하려 하는 정치권력의 비열함과 잔혹함만은 분명 잘 알고 있다.(122쪽)"고 말한다.
또한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인 도쿠멘타를 찾아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참가한 예술가들 가운데 디아스포라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공통적으로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가 수 세대에 걸쳐 야기한 '거대한 일그러짐'을 비판하고 있다.(196쪽)"고 덧붙인다. ‘기록, 보고’를 뜻하는 도쿠멘타(Documenta)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어떠한 형태든 부당한 희생을 치룬 사람들을 기억하고 역사적 진실을 밝혀 그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또한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인 도쿠멘타를 찾아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참가한 예술가들 가운데 디아스포라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공통적으로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가 수 세대에 걸쳐 야기한 '거대한 일그러짐'을 비판하고 있다.(196쪽)"고 덧붙인다. ‘기록, 보고’를 뜻하는 도쿠멘타(Documenta)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어떠한 형태든 부당한 희생을 치룬 사람들을 기억하고 역사적 진실을 밝혀 그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특히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같이 디아스포라의 전형인 유대인 출신 작가와 저작들을 향한 저자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에 따르면 그것들을 집단적인 민족의식이나 애국심의 발로로만 여길 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존엄을 주장하기 위한 반항(246쪽)'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조선의 말과 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자란 재일조선인 2세, 3세도 이와 똑같은 이유로 '조선 사람'임을 받아들여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지적한다. 온갖 식민주의적 관계가 그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고.
그동안 미처 몰라 보지 못한 것이든 알면서도 보지 않으려 한 것이든 디아스포라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책을 통해 역사적 소산인 디아스포라의 특수성을 이해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어 다행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이 역사가 저버린 사람들과, 이들의 반대편 또는 곁에 서 있는 우리가 다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동안 미처 몰라 보지 못한 것이든 알면서도 보지 않으려 한 것이든 디아스포라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책을 통해 역사적 소산인 디아스포라의 특수성을 이해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어 다행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이 역사가 저버린 사람들과, 이들의 반대편 또는 곁에 서 있는 우리가 다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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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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