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제공

돌이켜보면 그 명성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은 어느 늙은 경비병의 죽음이었다. / p.8

예전에 비해 일본 작가의 작품을 덜 읽게 되는 것 같다. 한국 작가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만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일본 소설이었다. '나카야마 시치리','하라다 히카', '미우라 시온'에 이르기까지 한국 작가들만큼이나 일본 작가들 중에서도 찾아 읽는 작품들이 꽤 있다. 아마 작년에 읽었던 책들을 줄 세운다면 일본 작품들도 꽤 많이 있을 듯하다. 특히, 작년에는 더욱 빠져 산듯한 느낌도 든다.

이 책은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년에 요네자와 호보부의 <가연물>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한 명의 주인공이 계속 다른 스토리를 연결해서 나가는 류의 장편소설이었는데 꽤 인상적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범죄학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지식과는 조금 다르게 맺어진 결말이 지금까지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작품 역시도 기대가 되었다.

소설은 솔론 제도라는 곳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솔론 제도의 영주가 칼에 찔려 살해되면서 기사 피츠존과 종사 니콜라가 솔론 제도 영주의 딸 아미나의 부탁을 받아 사건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암살 기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솔론 제도는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지형을 가진 곳이었는데 나름 과학적인 조사로 영주를 살인한 배후를 뒤쫓는 내용이다.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책장을 넘긴다면 영미권이나 유럽 소설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서양의 색깔이 짙은 작품이어서 놀랐다. 영주나 기사 등 학창시절에 배웠던 세계사 지식들을 꺼내서 읽었고, 500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기에 완독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대략 하루를 꼬박 투자해 읽었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피츠존이 했던 수사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가루를 사용해 발자국을 확인한다거나 흔적을 토대로 용의자를 쫓는 일들이 소설 안에서는 마술로 표현이 된 듯했지만 읽는 내내 현대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과학 수사처럼 익숙하게 와닿았다. 화학 약품이 아닌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나 기법으로 이를 해결했지만 시대상을 본다면 이 역시도 과학적인 수사의 기본 발판이 아니었을까. 

솔론 제도의 밀실이라는 설정과 더불어 마술 수사라는 판타지 느낌이 들어서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전작과 또 다른 매력이어서 재미있었다. 가지고 있는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올해 안에 순차적으로 읽을 생각이 들었다. 작가라면 기본적인 틀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아예 새로운 면을 읽게 된 작품이어서 아마도 믿고 읽는 작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간만에 소설의 매력을 물씬 느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