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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글쓴이
이경규 저
쌤앤파커스
평균
별점9.3 (98)
joowan88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 부모 / 김소월

세상이 시끄럽다. 
물론 35년을 살아오면서 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늘 무슨 일이 있었다.

그런 시끄러운 세상사를 잊고 웃기 위해서 우리는 코미디언을 찾는다. 
최근에 한국 코미디의 살아있는 전설 이경규 씨가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을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들어서 기쁜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지만 책은 사뭇 진지했다. 
그런데 입담 못지 않게 필력도 좋으셔서 그런 진지함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속마음을 들을 수 있어 나도 모르게 몰입할 수 있었고 주말 동안 단숨에 읽어버렸다.
명언 제조기로도 유명하신데 그 기대에 부응 하듯 삶에 대한 지혜를 농담으로 잘 포장해놓은 책이다.
덕분에 웃으면서 순간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4장에 이르렀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잠깐 책을 덮었다.

묘했다.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나 혼자만 이런 고민을 해왔던 게 아니구나. --- p.96

서른을 앞두고 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어머니와 나눈 작별 인사는 아직도 생생하다. 
울먹이며 포옹을 하고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어머니는 뜻밖의 말을 건네셨다.

"미안하다"

그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다 큰 사내놈이 울면서 보안 검색대로 걸어들어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뭔가 이상했다.

'엄마는 왜 "잘 지내라"나 “도착하면 연락해라”도 아니고 "미안하다"라고 했을까?'

'나는 왜 생겨났을까' 고민하던 내가, 이제는 내 딸은 왜 태어났는지 새로운 질문을 떠안는다. 그리고 언젠가 내 딸은 또 자기 아이를 보며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답 없는 질문을 아이에게, 또 그 아이의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태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질문을 물려받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 한평생을 살아간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 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뿐이다. --- p.97

평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어머니가 내게 미안함을 느낄 만큼 고된 삶을 살지는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고민을 해봤지만 그 미안함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바쁜 타지 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그 의문은 그저 어머니의 애틋한 작별 인사로만 기억 속에 남겨졌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일까? 그 후로 어머니를 뵐때도 직접 그 이유를 여쭙지 못했다. 
물어보기도 뭔가 낯간지러웠고 만날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든든한 보호막 안에서도 늘 허공이 느껴졌다. 허공은 "왜?"라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는 왜 나를 낳았을까, 나는 왜 이런 사랑을 받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또 다른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너는 왜 하필 나라는 아버지를 만났을까?' 그래서 가끔 딸을 보면 미안해진다. 내가 안고 있던 허공을 그대로 물려준 것 같아서. --- p.96

그 풀리지않던 기억 속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세월이 꽤 흐른 뒤에 알게되었다.

작년 어느 추운 겨울날 병원에서 영문도 모른채 태어나 울고 있는 한 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는데 그 작은 손으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왜 너의 아버지가 되었을까?' 그리고 '너는 왜 나의 아들이 되었을까?’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를 듣는가?"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이 미안함은 도저히 사라지지가 않는다.
이경규 씨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그저 이 '허공'을 서로에게 물려주고 또 물려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 ‘허공’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제 우리 아들이 걱정이다.
부디 ‘허공’이 우리 아들을 크게 괴롭히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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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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