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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글쓴이
무라카미 하루키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 (9)
소년

  데드히트라는 말은 처음 보았다. 영어로는 생각했던 대로 Dead Heat가 맞았는데 막상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Dead가 죽음이고 Heat가 충격이니까 충돌로 인한 사망사고를 말하는 건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레이스 같은 경기에서 두 선수가 동시에 들어와서 승부를 가릴 수 없는 경우라고 한다. 묘한 일이다. 승부를 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뛴 결과가 무승부라니. 어느 한 쪽이라도 덜 필사적이었다면 승부가 났을 텐데 둘 다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승부는 나지 않았다. 꼭 아이러니 같다.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미궁에 빠진다.



그게 어떤 방향이든 우리가 그 길로 가는 이유는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딱히 선택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혹은 어쩌다 보니 라고 말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뭐든 선택한 것이다. 설령 누가 시켰거나 대신 결정해줬다고 해도 암묵적인 합의나 동의는 해주었을 것이다.



사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이 길이 맞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은 이게 나아보여서, 라는 게 좀 더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 길이 다른 길보다 나아보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감일 수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일 수도 있고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마침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나 좋다. 중요한 건 왜 선택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 길을 걷고 있더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옳음’이란 사전에 정했다기보다 말 그대로 가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만약에 필사적으로 이 길을 뛰어갔을 때 무승부가 나올 줄 미리 알았다면 누가 필사적으로 뛸 생각을 하겠는가. 사람이 인생에서 필사적으로 뛸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릴 때는 이리저리 쏘다니느라 힘이 빠지고 나이가 들어서는 무릎이 좋지 않기 일쑤다. 방향을 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어서 온몸의 에너지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쥐어짠다는 기분으로 말 그대로 전력질주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런 만큼 모처럼 전력 질주를 했는데 무승부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면 그 누구도 그런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전력질주를 할 수 있는 건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첫 번째 단편 <레더호젠>은 말 그대로 급발진에 관한 이야기다. 종종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참으면서 살던 한 여자는 독일 여행을 갔다가 레더호젠, 즉 반바지를 파는 가게에 들린다. 여행 선물로 뭘 사오면 좋을지 물었더니 남편이 반바지를 사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명한 가게라서 그런지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입는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옷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남편을 당장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여자는 가게 주인과 타협하여 자기가 다른 남자를 데려와서 레더호젠을 입혀보고 그 옷이 맞으면 그걸 그 남자가 산 뒤 자기가 다시 사겠다고 제안한다. 레더호젠을 사는 건 그 남자이고 그 뒤에 그 남자가 여자에게 레더호젠을 팔든 말든 그건 본인들 소관이 아니므로 가게 주인은 승낙한다. 여자는 바깥에 나가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남편과 얼굴도 체형도 비슷한 독일 남자를 우연히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가게로 데려온다. 그리고 레더호젠을 산 뒤 일본으로 돌아오는데 느닷없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유나 해명을 물어봐도 여자는 일언반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이혼 외에 다른 결론은 없다는 것만 확실하고 분명하게 전할 뿐이다.



여자가 독일의 레더호젠 가게에 갔다가 대체 어떤 이유로 이혼이라는 길을 선택한 뒤 ‘전력질주’를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데려온 남자가 레더호젠을 입고 즐거운 듯이 가게 주인과 웃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남편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고. 그건 잠깐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한 차원이 아니었다. 소설 속 대사를 빌리면 여자는 그 순간 “자기가 얼마나 격렬하게 남편을 미워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대체 레더호젠이 뭐길래.



이런저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모르는 남자에게 사정해서 바지를 입혀보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바람 핀 남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화가 치밀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바지를 입고 생각없이 즐겁게 웃는 남자의 모습이 자기 마음도 모르고 웃기만 하는 남편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셋 다 일 수도 있고.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여자는 레더호젠 가게에서 낯선 남자에게 레더호젠을 입히는 순간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길로 깊숙이 들어와 버렸는지 문득 깨달은 게 아닐까.



말하자면 이제까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길이라고 믿었던 인생이 그 순간 이대로 가다가는 한 번도 전력질주를 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지금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달릴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걸어왔던 방향으로, 요컨대 지금까지 왔던 반대 방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전력질주를 했던 게 아닐까. 레더호젠 가게의 어떤 점에서 여자가 그걸 느꼈는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자는 그곳에서 바로 ‘지금’이라는 운명의 목소리를 들었고 마치 신호탄이 울린 것처럼 이혼을 결심했다. 이처럼 길은 사전에 알아보고 점검하고 결정한 뒤에 출발하는 게 아니다. 가다가 어느 순간 아니라고 생각되면 뒤를 향해 전력질주할 수도 있는 게 우리들 대부분이 걸어가는 길이다.



<택시를 탄 남자>도 그렇다.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유학을 왔던 여자는 자기에게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바로 그 좋은 눈으로 자신의 작품이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는 화가가 되기를 그만두고 미술상으로 전업해서 당장은 별로 비싸지 않지만 나중에는 분명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사서 유통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은 나름 성공해서 부자는 아니어도 가난한 화가보다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여자는 자기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마추어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제목에도 나온 택시를 탄 남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무명의 화가 안에 빛나고 있던 한 줄기 재능을 본 게 아니다. 그 화가에게는 재능이 없었고 그 그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된 말로 나중에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그 그림을 산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



여자의 말에 의하면 그 그림 속 남자는 꼭 자기 같았다. 그 택시의 이름은 ‘범용’이었고 자신은 범용함에 갇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생 속에 쓸쓸하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여자는 우연히 그리스에 갔다가 그림 속 남자와 똑같이 생긴 남자와 합승하게 된다. 그 남자와 어떤 이벤트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남자는 그저 “좋은 여행 되시길”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택시에서 내린 후 남자가 한 말을 한참동안 곱씹어보던 여자는 무언가, 자기 안에 아주 오랫동안 있었던 무언가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느끼게 된다.



이 단편의 주인공 역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해서 들어갔던 길에서 되돌아나온 사람이다. 주인공은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자기에게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다. 그러나 미술상으로 진로를 바꾼 다음에도 화가가 되지 못했다는, 이른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에게 있어 진정한 삶은 이쪽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눈이 좋았던 관계로 자신의 앞날까지 알 수 있었던 여자가 화가를 그만두고 미술상으로 전업한 것은 세간의 눈으로 보면 현명한 것이었으나 여자에게는 생존을 위해 삶을 포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집에 있는 대신 택시를 선택한 것처럼.



그러나 여자는 그리스에서 그 ‘택시를 탄 남자’를 만난 뒤 자신이 원래를 경로를 잃고 표류하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뭔가를 스스로 지울 수는 없고 단지 지워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교훈까지도. 그러나 내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사람은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히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여자가 말한 교훈은 이른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해석이지 그게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 여자는 자기가 선택한 길에서 되돌아나왔고 그로 말미암아 두 번 다시 어떤 길로도 갈 수 없을 거라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실은 다른 길을 여행 중이었다는 이야기로 상처를 봉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여자는 어쩌면 하지 못한 여행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 게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자는 자신의 작품에서 미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미술상으로 전업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미래로 갈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미래란 눈에 보이는 어느 목적지를 향해 네비게이션을 찾는 일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없는 목적지를 향해 길을 만드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자는 택시에 탄 남자 그림을 보고 범용함에 갇힌 자기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자는 아무런 재능도 없으면서 끝끝내 미래로 가려고 하는 남자를 동정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알 수 없는 어디로 가기를 원했던 사람이 아니라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택시에서 내린 사람인 것이다. 여자는 미지로 갈 생각이 없었다. 전력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한 번쯤은 내가 생각했던 길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다면 반대로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다. 여기가 좋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나아가 이 서로 다른 두 생각이 한 사람의 몸 안에 들어있는 것도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컨대 <폴사이드>와 같은 작품이 그렇다.



수영선수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쥔 남자가 있다. 원래 똑똑했고 눈치도 빨랐으며 결단력과 실행력도 있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남들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지나치게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한다. 남자도 그랬다. 이렇게 남들이 보기에 부러운 인생을 살다가던 남자는 어느덧 자기 나이가 서른다섯이 되었음을 깨닫고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생각한다. 수영을 할 때 절반을 오면 벽을 차고 다시 턴하는 것처럼 남은 인생을 새롭게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모자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산업 혁명 당시의 증기기관차처럼 모든 것은 씩씩거리며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울게 되는 것일까.



남자는 수영선수일 때 경기를 하면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가령 400m 경기라면 200m까지 가면 절반 그리고 다시 100m를 가면 1/4, 다시 50m를 가면 1/8… 이렇게 거기를 계속 쪼개다보면 어느새 자기가 헤엄치기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요컨대 앞으로 400m를 전력으로 헤엄쳐야 해, 라고 하면 좀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5m를 80번 가면 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타입이다. 달리 말하면 이 남자는 하나의 결승점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 동시에 80개의 결승점을 통과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보다 80개의 결승점을 통과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한 타입인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는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수입, 좋은 아내.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결승점을 착실하게 통과하다 보면 결국은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하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영경기는 5m를 통과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고 마침내 80번을 통과했을 때 경기가 끝나 있었는데 인생은 결승점들을 하나씩 하나씩 통과할수록 어쩐지 힘이 빠진다. 뭐랄까. 전력을 다해 작은 결승점들을 통과해 왔지만 반환점을 돌았다고 생각하는 지금에 와서는 앞으로 남은 결승점을 통과해도 최후의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폴사이드에 있는 것이다. 다시 수영장에 뛰어들어 남은 거리를 헤엄치고 싶은 동시에 이제는 그만 벤치에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영장에서 남은 거리를 모두 헤엄친다고 해도 결국에는 폴사이드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수영이란 출발점에서 결승점을 오가는 일이기 전에 폴사이드로 들어와서 폴사이드로 올라오는 일 아닌가. 외도를 하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건 싫다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삶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맞고 틀림이 동시에 결승점을 통과해서 대체 어느 쪽이 이긴 것인지 말하기가 애매한 ‘데드히트’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단편집의 제목을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라고 지은 것은 흥미롭다. 회전목마는 알다시피 고정된 채 회전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기지도 지지도 못한다. 말하자면 모두가 무승부인 셈인데 얼핏 보기에는 목마마다 순번이 있는 것 같아 꼭 그곳에 ‘승부’라는 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이 누군가에는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정지한 것처럼도 보인다. 회전이란 말부터가 그렇다. 회전은 전진인가 고정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그곳에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달리는 것처럼 보이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든 거기에는 어떤 운동성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도 실제로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25년 5월 9일부터 2025년 5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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