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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강희제
글쓴이
조너선 D. 스펜스 저
이산
평균
별점7.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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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당태종과 더불어 중국 사상 최대의 명군으로 불리는 황제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유럽에서도 명성을 얻었고, 곧잘 무협지나 역사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이 상당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 [강희제]와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를 읽어보면, 강희제가 우리 세종처럼 '천재', 또는 '성인' 타입의 군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학문을 좋아해서 한학에서부터 서양과학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공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설에서처럼 대단한 수준에 올랐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그도 그럴 것이, 강희제는 청조가 중국을 장악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의 황제로, 어려서부터 편안하게 공부나 하며 세월을 보낼 처지가 아니었다. 즉위하자마자 오보이 등 권신들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부심해야 했으며, 오삼계 등 한때 청조를 도왔던 변방 세력들이 일으킨 '삼번의 난'을 진압하느라 수십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도 다시 러시아와 몽고 세력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대범하면서도 치밀하고,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이었다. 이후 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백년의 부흥이 이루어지고 소수민족이 세운 청조가 수백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강희제에 힘입은 바 컸다. 그뿐이 아니다. 역사적 공과 문제를 뛰어넘어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황제라고 하는 직분에 대해 보여준 성실함과 겸허함에 있다.

수억의 백성을 다스리는 오직 한 사람,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권력자였던 중국의 황제. 이런 권력을 어지간한 사람이 맡으면 마음껏 권력을 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거나, 너무 큰 부담에 지쳐 종교 또는 향락의 세계로 도피하기 쉽다. 로마제국의 칼리귤라, 네로, 송의 휘종, 명의 무종 등. 그러나 강희제는 황제의 자리에 앉은 이상 그 직분을 힘 닿는 데까지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마치 프로테스탄티즘의 소명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제갈양의 [출사표]에 나오는 "鞠躬盡췌(몸을 굽히어 최후까지 노력한다)"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누군가가 "그것은 신하의 말로, 폐하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고 하자, 강희제는 "짐은 하늘의 신하가 아니냐"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무에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 몰두하면(그의 아들 옹정제처럼), 심신이 피로해져서 일찍 죽지 않으면 까다로운 독재자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강희제는 어느 정도까지만 최선을 다해 국사에 임하고, 자신의 여가 활동, 가족과의 생활, 개인적 공부 등을 할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따라서 남은 정무는 신하들에게 위임되었다. 옹정제는 이런 방식이 황제의 권력을 불철저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여 비판했지만, 그처럼 하루 종일 서류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통치방식은 오래 가기 어렵고, 웬만한 현군이 아닌 이상 적응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근무시간에는 성실히 일을 하고 퇴근해서는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모범적 직장인의 모습을 닮은 강희제의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다.

강희제는 인간적으로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 어려서부터 온갖 음모와 권력다툼을 겪으며 성장해야 했고, 황위계승을 둘러싼 암투를 없애고자 일찍부터 황태자를 세웠으나 이번에는 황태자를 "떠오르는 태양"으로 알고 아부하여 부귀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들어 온갖 부패상을 다 연출했다. 강희제는 스스로 사랑하는 아들을 두 번 씩이나 폐위시켜야 했고, 그 가운데 믿었던 신하나 다른 황자들의 검은 속내를 알고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희제는 그런 인간적 고뇌를 꿋꿋이 극복하며 자기 직분을 수행했고, 난폭한 통치를 하거나 종교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 작성한 유훈에서 당당하게 "나는 최선을 다해 이 나라를 통치해 왔다"고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더구나 그가 무엇이든 맘대로 즐길 수 있는 절대권력자였다면 더더욱 흔치 않을 것이다.

정식 역사기록과 황제의 서신 등을 종합해서 만든 이 전기에 황제의 연애 이야기는 없다. 전근대 동양 사회의 성격상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의례적으로 비빈들을 대했던 것이 아니라, 진정 가족으로서, 부부로서 정을 느끼고 대했던 것 같다. 원정을 마치고 예정보다 일찍 돌아간다는 사적 편지를 보내면서 "공연히 시끄러워질테니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단 비빈들에게만 살짝 귀띔해줘라"고 한 것이나, 순행길에 맛있는 과일을 먹고 그 과일과 먹는 방법을 궁궐의 비빈들에게 전하면서 "물건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마음은 참으로 먼 곳에서 전하는 것이니 비웃지 말라"고 은근히 수줍은 듯 말을 보태는 황제의 모습. 진정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면서, 진솔하게 살아간 한 남자의 모습이 아닌가.

[인상깊은구절]
옛 사람들은 언제나 "제왕은 마땅히 일의 크고 중요한 부분에만 관심을 가지고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백대에 우환거리를 남긴다. 작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마침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되므로 짐은 매사를 꼼꼼하게 살펴 왔다.

만일 오늘 한두가지 일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내일은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 더 많아진다. 내일도 다시금 편안하고 한가롭기만을 힘쓴다면 훗날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이 쌓이게 된다. 황제가 처리해야 할 일은 지극히 중요해서 미루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짐은 크든 작든 모든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상주문에 한 자라도 틀린 것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서 돌려준다. 모든 일을 소홀히 못하는 것은 짐의 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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