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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
- 작성일
- 2025.5.25
일억 번째 여름
- 글쓴이
- 청예 저
창비
너는 내게 압도적인 여름이었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손날을 이마에 붙여 만든 그늘, 아스팔트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아지랑이.
그 속에서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덥기 때문에 존재하는 시원한 것들은 모두 여름의 상. 청예의 일억 번째 여름은 끈적하게 더운 여름과 서늘하게 추운 여름이 공존하는 세계, 그 안에서 자신의 '쓸모'를 묻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일억 번째 여름은 주홍과 이록, 이록에게는 배다른 형제이자 미미족을 배신하고 두두족이 된 '일록'과 같은 미미족인 '연두'와 '백금' 다섯이 만들어가는 구원과 삶의 서사시이다. 서로가 있어야 비로소 완벽해지는 아이들은 지키고 싶은 사람의 삶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다리를 내어주고, 목숨을 바치고, 끝없는 다정을 표현하며, 잘못된 방식일지라도 지키겠다 외친다. 무자비한 자연과 멸망, 멸족의 절망 속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하는 타인의 존재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랑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사랑에 관한 소설을 많이 읽어왔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무게가 너무 뜨거워서 이야기 속에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라는 순수한 감탄이 터져나오고, 책 전체에 밑줄을 긋고 싶었을 정도로 인상깊은 문장이 터져나온다. 오직 단 한 사람의 미래를 위해,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하여 기꺼이 온 삶을 던지는 세계라는 청예 작가님의 말이 계속 상기되는 책이다.
일억 번째 여름 속 사랑 뿐만 아니라, 미미족과 두두족에게 얽혀있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이야기한다.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에 멋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질적 차이를 계산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을 탄압하고 차별해온 역사는 과도하게 지속되었고, 현재 진행중이다.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며 살까. 세계는 커다란 퍼즐과 같아서, 단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그 빈 자리는 영영 남겨둔 채 미완으로 남는다. 일억 번째 여름 속 미미족과 두두족 이야기는 결코 낯설거나, 먼 미래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한한 여름의 세계, 멸망의 목전에서 사랑을 외치는 일억 번째 여름은 생존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 내면에 공감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에겐 각종 시험이 끊이지 않고, 증명의 증명을 이어가는 삶은 결국 모든 것을 지치게 만든다. 지긋지긋한 탈력감 속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잡힐 듯 잡히지 않지만 늘상 곁에 있는 사소한 행복이다.
오늘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여름이 무겁지 않길 빌며.
P 11. 우리에겐 반드시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P 119. 나는 너에게 쓰임이 있는 사람. 너는 나의 쓰임을 만들어 주는 사람.
P 163. 차이 속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으렴. 우리는 중간값의 산물이니 그 자체로 완벽하단다.
P 166. 여름의 수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단 한 명의 사람만이 나를 살게 하니까.
🌿 '일억 번째 여름' 서평단 활동을 위해 출판사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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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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