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산문

kosinski
- 작성일
- 2025.6.6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글쓴이
- 슈테판 츠바이크 저
다산초당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사망하기 직전인 1940년과 1941년에 씌어진 것들이다. 독일어로 소설과 전기물을 작업하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슈테판 츠바이크는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떠났고, 이후 미국으로 다시 브라질로 향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그의 사후 칠십여 년이 지난 2023년, 그의 연구자들에 의하여 출간되었다.
“안톤은 정말로 직업이 없었고, 실제로 온종일 산책했다. 매일 아침 밖으로 나가 도시 이곳저곳을 한가롭게 거닐었지만, 사람이 이마 아래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주의 깊고 현명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는 모든 것을 관찰했고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차를 멈춰 세우고 말의 굴레가 잘못 씌워졌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지적이었으므로 마부는 웃으며 안톤에게 굴레를 고치게 했다. 그다음은 어느 울타리를 지나며 주인을 불러 썩인 기둥을 새로 치해야 한다고 경고했고, 주인은 그 일을 안톤에게 맡겼다. 안톤이 돈 욕심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정직한 마음으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다는 걸 모두가 알기에, 사람들은 그가 제안하는 것을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였다.” (pp.14~15, 〈걱정 없이 사는 기술〉 중)
책 안의 에세이에서는 평범한 이들을 향하고 있는 작가의 눈길을 읽을 수 있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의 안톤이 그렇다. 우리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홍반장을 연상하면 정확하다. 안톤은 돈을 추종하는 대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정직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바라봄을 통하여 돈이 아니어도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터득한 존재이다.
“...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모든 사건에 관심을 둘 의향이 매우 강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더 강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자연법칙은 우리의 참여 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한다. 강한 흥분이 연속되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과도한 긴장은 일종의 마비를 일으킨다. 2000년 전에 이미 그리스 극작가들은 이것을 비극의 법칙으로 알고 있었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는 극의 길이를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으로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비극이 한없이 길어지면, 그것에 몰두하는 능력이 오히려 감소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이 숙명적 비율을 체감하고 있다. 세계의 극이 길어질수록 장면은 점점 더 끔찍해지고, 사건이 자극적일수록 그것을 진심으로 연민하는 능력이 더욱 줄어든다.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은 마음을 파괴하고, 시대가 우리에게 연민을 더 많이 요구할수록, 우리의 지친 영혼이 느낄 수 있는 연민은 더 줄어든다.” (pp.55~56, 〈센강의 낚시꾼〉 중)
누군가로 명명할 수는 없지만 〈센강의 낚시꾼〉에 등장하는 낚시꾼들 또한 험난한 역사를 함께 헤쳐 나가는 우리들과 다름 없다. 역사의 현장으로부터 조금 비껴서 있다고 해서 그들을 향하여 냉소를 보낼 필요가 없음을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역사적 격랑, 그 격랑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가 피치 못해 선택하는 모든 회피를 공감 없음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로댕)의 작업실에 머물렀던 그 한 시간에 나는 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선하고 유효할 수 있는지 알았다. 자기 자신과 모든 목표 및 목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p.77, 〈영원한 교훈〉 중)
어쩌면 작가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유럽을 떠난 자신의 도피를 죄책감처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작가의 모든 작품 활동의 기저에 깔려 있는 선한 의지를 책에 실린 여러 에세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한 의지는 그가 자신의 문학을 기능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저 ‘완벽을 향해’ 나아갈 때 도착하게 되는 어떤 지점으로 인식하고 있음으로 확인된다.
“...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몸과 숨을 분리할 수 없듯이 영혼과 자유를 분리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위해, 먼저 어둠의 시간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야 했습니다...” (p.116, 〈이 어두운 시절에〉 중)
책에는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몇 편은 아예 어떠한 매체에도 발표된 적이 없는 미발표 원고이고, 나머지 것들은 뉴욕과 파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발행된 잡지에 실린 것들이다. 국내에 출간된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물과 소설을 대부분 읽었다. 아직 읽지 않은 몇 권의 책이 있는데, 그저 아껴 두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만큼 작가의 글을 애정한다.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 클라우스 그레브너, 폴커 미헬스 엮음 / 배명자 역 /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Die Kunst, ohne Sorgen zu leben) / 다산초당 / 145쪽 / 20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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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