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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위한시간
- 작성일
- 2025.6.7
모순
- 글쓴이
- 양귀자 저
쓰다
요즘 책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예전엔 책을 통해 위로받고, 성장했고, 스스로를 해결하곤 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 익숙한 루틴이 끊긴 시간 속에서 나는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소설을 읽어보면 어떨까?”
나는 평소 자기계발서, 철학, 인문학 계열의 책만 읽어왔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책들. 그런데 그런 책들은 지금의 지친 내게 채찍질처럼 다가왔다. 더 나은 내가 되라고, 더 깊이 생각하라고, 더 노력하라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던 나에게는 그조차 고역이었다.
그래서 평소 좋다고만 들었지 “소설이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외면했던 책들 중에서, 나의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모순』(양귀자)*이다.
요즘 따라 인생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삶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정반대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 그래서, 정반대의 삶을 사는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자꾸만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과연 누구의 삶이 행복이고, 누구의 삶이 불행일까?”
나 역시 다사다난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끝없이 반복되는 시련 덕분에 아주 작은 일상에도 큰 행복을 느끼는 지금의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생은 한 번에 두 개의 길을 걸어볼 수 없으니, 비교가 어렵고,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다
책 속에서 나의 마음을 붙잡은 문장들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그중 하나는 이 문장이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
만약 이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지금 얼마나 부피 있고 깊은 인생을 살아온 걸까.
버거웠던 날들,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들, 다 지나고 나니 내 안을 단단하게 채우고 있었다.
또 다른 문장.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의 내 삶이 어쩌면 세 겹이 아닌 네 겹, 다섯 겹, 아니 수십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려 해도 쉽지 않고, 참고 견뎌내려 해도 지치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
그리고 곧 깨달았다. 그들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구나.
사랑하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고, 그 사랑 덕분에 오늘도 살아내고 있는 거라는 걸.
?
또 이런 문장도 오래도록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만약 이 문장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의 장부는 참 두꺼울 거다.
나는 작은 상처도 오래 간직하고, 받은 은혜도 크든 작든 모조리 마음에 적어두는 사람이니까.
받아야 할 빚도 많고, 돌려줘야 할 빚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받은 건 기억에서 자꾸만 사라지고, 준 것만 마음에 남아 자꾸 지치고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도 이젠, 사람들처럼 장부를 ‘덜 정직하게’ 써보고 싶어졌다.
?
그리고, 마지막. 이 책에서 가장 나를 멈춰 세운 문장.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정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래, 왜 나는 내가 불행한 건 도무지 납득을 못하고 있었던 걸까?”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기준들, 내 기대들, 내가 ‘행복해야 한다’고 믿었던 신념이, 사실은 꽤나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통해 나는 내 ‘소중함’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니까, 그러니 더더욱 행복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이 책은 작가가 원했던 대로,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절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매 장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아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땐… 아쉬웠다.
앞으로 펼쳐질 주인공의 삶이, 마치 내 인생의 다음 장면처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
『모순』을 통해 나는 지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았고, 이 삶이 어쩌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위안을 얻었다.
누구의 삶이 행복이고 불행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도 나를 아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충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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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