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오우아
- 작성일
- 2010.4.19
정관정요
- 글쓴이
- 오긍 저/김원중 역
글항아리
당태종은 세 종류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허물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 즉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300번이나 간언한 위징(魏徵)이 질병으로 죽자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라고 애석함을 토로했다.
이렇게 세 종류의 거울을 근본으로 했던 당태종의 치세는 ‘정관의 치’로 널리 칭송되면서 제왕학(帝王學)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당태종의 위대한 정치는 태평성태의 대명사가 되었다. 후대 사람들이 국가를 중흥하기 위해서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교과서로 삼았던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가령, 송나라의 개혁에 앞장섰던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에게 “그대는 위징이 되시게 나는 태종이 될 테니”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오긍(吳兢)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혼란한 정치를 보면서 사관(史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관지치’를 그리워하면서 불후의 명작『정관정요(貞觀政要)』를 남겼다.
그러면『정관정요』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관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위지치(無爲之治)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무위지치는 상책이다. 군주의 덕이 자연스럽게 백성을 교화해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여 자발적으로 군주의 미덕에 감화되어 따르는 것이 차선책이다. 반면에 창업할 때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궁궐의 화려함만을 쫓는 결과 군주의 미덕을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낮은 계책이다.
당태종의 무위지치를 살펴보면 첫째, 신하의 간언에 귀 기울이면서 편안함을 경계했다. 그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물고기와 물’에 비유하면서 국정을 살피는데 개인의 이해를 넘어 대의를 중시했다. 그는 ‘군주가 덕치를 하면 그 미덕을 도와서 일을 처리하고, 군주에게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 구해주어야 하오. 이것이 군주와 신하가 마음을 같이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조정에 나와서는 직언도 간언도 하지 못하면서 자손들에게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밝힌 신하를 현명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둘째, 신하의 행위를 육정(六正)은 장려하고 육사(六邪)는 경계했다. 육정이란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을 말한다. 반면에 육사란 구신(具臣), 유신(諛臣), 간신(奸臣), 참신(讒臣), 적신(賊臣), 망국신(亡國臣)을 말한다. 관리를 선발하는 데 있어 ‘다스림의 근본은 사람’이며 재능과 덕행을 모두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소한 이치도 꿰뚫어보았다. 가령 태종이 배를 타려고 하는 태자를 보고 ‘너는 배 타는 방법을 아느냐?’라고 하자 태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태종은 ‘배는 군주에 비유되고, 물은 백성에 비유된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또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고 염려했다. 또 태자가 굽은 나무 아래에 기대는 것을 보고는 ‘너는 굽은 나무의 이치를 아느냐?’고 하자 태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태종은 ‘이 나무는 비록 굽었지만 먹줄을 통해 곧은 나무로 가공할 수 있다. 군주 된 자는 설사 덕행이 없을지라도 간언을 받아들일 수만 성군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네 자신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넷째, 군주의 신중한 끝맺음을 책망하면서 받아들였다. 즉 아는 것보다 실천이 최우선이다, 조심하고 삼가라,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소인을 멀리하라, 근본에 충실하라, 감정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지 마라, 빈번한 사냥은 재앙을 부른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도 예와 충이 필요하다, 겸손만이 교만과 탐함에서 구해줄 수 있다, 군주의 정성 앞에서는 재앙도 무색해진다, 이것이 군주의 시종여일(始終如一) 10 가지 사항이었다.
이밖에도『정관정요』에는 백성들의 이익을 손상해가면서 욕심을 채우는 것은 마치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은 배는 부를지언정 곧 죽게 된다고 하면서 군주자신의 도리를 바르게 했다. 그리고 숲이 울창해야만 새가 깃든다, 고 하면서 인의(仁義)를, 백성은 흐르는 물이라고 하면서 도덕, 예의, 성실, 신용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또한 갑옷과 화살의 직무를 말하면서 형법의 관대하고 공평함을, 명주(明珠)로 참새를 맞추는 것을 아깝다고 말하면서 뇌물로 부귀영화를 얻을 수 없다는 등등 새겨들을 만한 대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정관지치의 실체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과연 어느 것이 어려운가를 이해하는 데 충분했다. 당태종의 리더십이 역사의 거울에 비춰지면서 수성이 왜 어려운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깝게 현실의 정치를 보면 있으면 더욱 뚜렷해졌다. 오히려 ‘정관지치’를 백안시하는 위기감에 휩싸이게 했다. 이제라도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다”를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