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의 소리

샨티샨티
- 작성일
- 2010.4.28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글쓴이
- 미치 앨봄 저
살림출판사
뒤늦게 피어난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내리던 화요일 창밖을 보니 이제 다 읽고 감흥에 젖어 느꺼움을 더하는데 모리 교수가 미소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넨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올해 초에는 이별할 준비도 미처 하지 못한 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인들을 보지 못할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슬픔으로 얼룩진 나날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정에 굶주려 지냈던 제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전하며 혈육같이 돌봐 주던 선생님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며 회한에 젖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도 아이들과 부딪히며 씨름하느라 무심히 흘려 보내버린 시간이 씁쓸하게 웃으며 바쁘다는 핑계 속에 홀대하며 지냈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태어나 한 세상을 살다 나는 간다는 말도 못하고 홀연히 떠나버린 죽음 앞에 아린 마음을 부여안고 생전에 잘해주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후회해 보았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나이 들어갈수록 삶을 마감할 때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며 살아야할지 반문할 때가 많다. 투병하며 힘들게 생을 마감하는 일보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튿날 평안히 영면하는 죽음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것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발아들이며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알고 있기에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중대한 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남을 사람과 대화하면서, 살아남을 사람이 알아야 할 것들을 말한다.'P190
루게릭병을 앓으며 죽음의 그림자를 껴안고 살아가는 모리 교수는 한 방송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16년 전 가르침을 전하던 제자와 만나 새로운 삶의 궤적을 밟아가는 길에 나섰다. 제자이자 친구인 미치에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담담히 전하며 일생일대의 논문을 작성해 내려가는 숭고한 작업은 매주 화요일마다 특별한 화제로 진행되었다. 숱한 이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지낸 사람들 중에 모리 교수에게 미치는 각별한 존재였다. 서로 닮은 점이 많아 잘 어울리는 친구처럼 살갑게 지내고 싶은 제자로 숨이 멎는 날까지 스승이 함께 호흡하고 싶은 이로 비춰졌다. 대학을 졸업한 미치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매몰되어 사느라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함께 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미치는 마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처럼 착각하고 바동거리며 사느라 죽어가는 선생님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승은 뒤늦게 자신을 찾아 온 제자를 미소를 띤 채 살포시 안으며 마지막 인생길에 동행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배우며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숱한 학생들을 이끌며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수업하며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학교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통과의례 속에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어둠을 밝은 등불로 걷어내 큰 가르침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선생님과의 만남은 강한 울림으로 가슴에 화톳불을 지필 때가 많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는 학창 시절 스승과 제자의 바람직한 관계를 넘어 소통하며 지내는 삶의 소중한 인연이 씨실과 날실로 고운 무늬를 수놓으며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스승의 고통을 지켜보며 그것을 조금이나마 나누어 덜어주려는 제자의 마음은 지식을 전수 받던 기계적인 관계를 넘어 사제지간의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한다. 청춘의 패기가 살아 숨 쉬고 열정이 강의실을 가득 채우던 대학 시절 미치와 모리교수는 방과 후 인생에 관한 담론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죽음의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 가려 했다.
씨앗이 적정 환경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순환 과정을 따르는 자연적인 질서는 어쩌면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흡사하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무반응, 동생의 아픔 등으로 점철된 선생님의 음울했던 기억을 진솔하게 드러낼 때는 굴곡 있는 삶을 극복한 선생님의 노력이 숭고함을 더했다. 새 엄마가 들어와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이룸으로써 온전한 가족을 이룸으로써 서로 사랑하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유대감 속에 더욱 발전하는 이로 자리할 수 있었다.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터득한 삶의 질서는 자연적 흐름에 순응하며 지금 이 순간 현재적 삶에 충실하게 했다. 서서히 생명줄을 갉아 먹는 루게릭병을 받아들이며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처럼 여기고 모리 교수는 미치에게 죽음, 가족, 탐욕, 결혼, 용서 등을 테마로 떠오른 단상을 전하며 제자에게 크고 작은 감동을 전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그리고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아라,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정상인도 감내하기 힘든 노년을 병마와 싸우면서 깨어있는 영혼으로 제자와 교류하며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르침을 전한 스승의 숭고한 사랑은 경외감을 더한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전하며 진정한 자기만족을 더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라는 금언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게 무엇인지를 각인시켜 준다. 모리 슈워츠! 그는 미치의 스승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의 진정한 스승으로 남아 탐욕적인 눈으로 바동거리며 사는 우리들 가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인생의 등불로 남아 밝은 빛을 전한다.
‘자신을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자신을 바쳐라.’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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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