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위로
오우아
- 작성일
- 2010.8.2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글쓴이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열린책들
당신은 베르테르 효과를 알고 있나요? 사랑하는 여인 로테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버렸던 베르테르입니다. 나폴레옹이 일곱 번이나 읽었을 정도로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명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젊은이가 사랑의 열병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끓는 것은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님을 역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 자살하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 베르테르의 슬픔은 로테를 사랑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알베르트와 약혼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말했습니다.. 자기의 시간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일하는 데 쓰고 다른 한쪽을 쉬는 시간을 여자에게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는 젊은이는 쓸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애인으로서 끝장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은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벅찬 감동을 받았는지 그녀와 왈츠를 추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비길 데 없이 사랑스러운 여성을 내 팔에 껴안고 번개처럼 날아다니다 보니 주위의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더군. 빌헬름,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아가씨는 다른 어떤 남자와도 왈츠를 못추게 해야 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그 때문에 설혹 내가 파멸하는 있더라도’ 말이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하게 된 후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국에 대해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로테의 마음 속에 자신이 들어 있음을 느낄 때에 그는 아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테가 알베르트를 신사라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그는 모든 명예와 지위를 박탈당한 기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신은 안타까운 정열로 말미암아 불안에 시달리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상실해 있을 당신의 친구에게 한 방울의 진정제라고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한 방울의 진정제는커녕 오히려 ‘격정에 사로잡힌 인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격정에 사로잡힌 인간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모두 잃는다, 고 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베르테르는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감정을 참는 데도 한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사람이 강하다 약하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는 고통의 한도를 견뎌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베르테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 즉 어떤 치료를 한다 해도 생명활동을 다시 되살릴 수 없을 때 자살이라는 것이 나약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몸을 파멸시켜서 속죄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과연 죄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말했습니다.
베르테르에게 사랑은 고통스러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사랑이 즐겁다고 한다면 단순한 로맨스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꼭 고통스러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에 맞서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베르테르가 ‘그녀를 내게서 멀어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끔 그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내게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남자의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명제와 반(反) 명제를 끝없이 되풀이 하던 그는 끝내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로테에게 자신의 결심을 고백하면서 “이것은 절망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참고 견디어냈다는 것, 당신을 위해서 스스로 몸을 바쳐 희생하겠다는 것에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오늘날 우리들의 가장 절실한 자화상이 된 것은 우연이라고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랑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즐거운 고통이든 고통스러운 즐거움이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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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