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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 작성일
- 2010.12.14
한비자
- 글쓴이
- 한비자 저
글항아리
먼저 상식문제부터. 제갈량이 죽으면서 후주 유선에게 읽도록 권한 책은? 답은 [한비자]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 일컬어지는 한비(韓非:BC 280?∼BC 233)는 전국시대 말기 법가사상의 집대성자다. 한나라의 공자 출신인 한비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었지만 문필은 출중했다. 한비의 《고분》과 《오두五蠹》를 읽고 나서 진시황이 「그와 더불어 노닐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극찬을 남길 정도로 빼어났다. 오늘날 한비의 학설은 법가라는 정치사상 자체보다는 리더십이라는 기업경영과 인간경영 측면에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법가의 세는 현실주의적 정치관점에서 국가란 큰 조직의 경영을 다루고, 술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인간관계의 경영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조직관리와 인맥관리란 측면에서 한비의 실용적인 사상이 재조명 받고 있다.
[한비자]는 일단 [도덕경]과[장자]의 장점을 갖추고 있다. [도덕경]의 도가사상은 《해로解老》 와 《유로喻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장자]의 교훈적인 이야기와 서사의 재미는《설림說林》《내저설內儲說》《외저설外儲說》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한비는 중국단편소설의 비조로 알려질 만큼 [한비자]에는 '맛난 이야기'가 많다. 역린逆鱗, 화씨벽和氏璧, 자상모순自相矛盾, 수주대토守株待兔, 남우충수濫竽充數, 삭족적리削足適履 등 다양한 고사성어가 이를 증명한다. 하나의 고사성어가 한 편의 이야기이다. 처음[한비자]를 접하는 이들은 이야기성과 역사성이 풍부한 편장에 흥미를 보이게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철학과 사상적 색채가 진한 편장들 위주로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 《망징》과《해로》를 추천한다.
춘추시대는 유가의 덕을 전국시대는 법가의 힘을 숭상했다. 유가는 요순 같은 성현을 이상적인 인격상으로 간주하고, 법가는 공명정대한 패왕을 이상적인 인격상으로 간주했다. 법가가 이상시하는 인간상은 계급에 따라 세가지 유형이 있다. 위로는 공명정대한 법률에 의거해 통치하는 패왕, 중간은 이윤, 관중, 상앙 같이 제왕술에 통달한 법술지사, 아래로는 평시에는 농사를 전시에는 병사가 되어 싸우는 농민전사이다. 한비는 역사발전을 상고—중세—당금 세 단계로 구분하고, 상고시기에는 도덕으로, 중세시기에는 지모로, 현대에는 기력으로 경쟁한다고 보았다. 전국시대는 전란이 끊이지 않고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격차가 극심한 시대. 이런 부조리한 환경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식을 본격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국시대에는 성선설, 성악설 같은 각종 인성론이 대두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비의 인성론은 '인성자연론'이라 불리는데, 인간의 본성이 편안함과 이익을 좋아하고 위험과 재해를 싫어함을 강조한다. 호리好利,귀인貴因,자위自為이 세 가지에 기반하여 공리주의적 인간관을 전개했다. 법률제도의 인성적 기초도 바로 흥리제폐興利除弊이다.
반대로 한비가 비판한 인물들을 살펴보자. 우선적인 비판대상은 영주귀족과 대관료지주계급이다. 이들은 중인重人, 중용지신重用之臣이란 말로 자주 비판당한다. 두번째로 《오두》에서 사회의 기생충으로 간주된 다섯 종류의 사회집단을 들 수 있다. 인의 도덕정치를 주장하는 유가언론으로 나라의 국익을 해치는 세객과 종횡가, 사사로운 무력으로 나라의 질서를 해치는 협객, 공권력에 의지해 병역이나 조세의 부담으로 벗어나는 권문귀족, 농민들의 이익을 빼앗는 상공업자가 그러하다. 세번째로 혹세무민하는 무당, 점쟁이, 광대, 유랑민 등이 있다.
위대한 사상가의 학설은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다. 항상 진보적인 면과 보수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다. 한비자도 그러하다. 한비의 진보적인 면은 공명정대함을 제1원칙으로 한다는 점과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독재를 제어한 측면을 들 수 있다. 그는 법의 공명정대함을 거울과 저울의 비유를 들어 말한 적이 있다. 가령 거울은 흔들림 없이 맑은 상태를 보존해야 아름다움과 더러움을 비교해 낼 수 있으며, 저울은 흔들림 없이 정확함을 유지해야만 가벼움과 무거움을 그대로 잴 수 있다며 법의 정의를 강조한다. 또한 인재를 등용할 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측면을 배제하고 업적과 실력에 의거한 공정한 인재등용을 강조한다.
반대로, 한비자 사상의 한계점도 명백히 드러난다. 먼저 당대 봉건적 사상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중소지주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영주귀족과 대관료지주계급을 적으로 삼아 논술할 뿐 관리와 민중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음으로 군주의 절대권력을 핵심에 놓는 전제군주제를 지향하지만 독재나 형벌의 남용을 방지하는 예방책을 소홀히했다. 입법의 권한을 군주 일인에게 귀속시켜 악법과 허점의 발생을 방지할 대비책이 미비하다. 세번째 한계는 윤리학적 모델을 전혀 취하지 않는 반인문주의 문화론이다. 학자의 정치참여를 배제시키고 언론을 통제하는 비민주적인 문화이론을 전개한다. 마지막으로 중농주의 경제관에서 오는 한계점이 있다. 사실 공리주의 시각에서 본다면 중상주의가 좀더 발전지향적인데 농사와 전쟁에만 신경이 집중되어 경제활동의 보다 큰 비전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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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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