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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을)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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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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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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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대실 해밋 Dashiell Hammett


 


그렇다. 나는 <몰타의 매>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책의 1/3 쯤에 이르러 샘 스페이드가 브리지드 오쇼네시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데,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 모든 글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후사정은 모두 생략할 것이다. 주인공의 직업, 사상 이런 것들도 모두 생략할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다만 내 말하기에 꼭 필요한 부분들만 적어나갈 것이다. 샘 스페이드가 주인공이고 탐정이고… 하는 것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 남자의 이름은 찰스 플릿크래프트. 어느 날 문득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몇 년 후, 그의 부인이 자신의 남편을 찾은 것 같으니 자세히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 사람은 찰스 플릿크래프트가 맞았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찰스 피어스로 자신을 바꾼 뒤였다. 그리고 플릿크래프트는 자신이 피어스가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나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이 소설을 좋아한다.




"그 남자한테 일어난 일은 이런 겁니다. …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 그때 빔인가 뭔가 하는게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 플릿크래프트 앞의 보도를 박살냈습니다. … 깨진 보도 조각이 튀어 올라 뺨을 강태했을 뿐이죠. …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며넛 그 흉터를 손가락으로 …뭐랄까 사랑스럽다는듯이… 만졌습니다. …경악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준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p85




그리고 이어서,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떨어지는 밤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p85




사실 여기서 멈춘다면 이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런 운명의 불공평함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격이 지난 뒤 그 점은 받아들였다. 그를 괴롭힌 것은 그가 영위해 온 정연한 일상이라는 게 인생 본래의 길이 아니라 인생을 벗어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p86




"그는 철제 빔이 추락한 장소에서 5미터도 가기 전에 이 새로운 발견에 따라 자기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다시 평화를 되찾지 못하리란 것을 확신했다. … 그 자신도 난데없이 살던 곳을 떠나서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특히나 이 '5미터도 가기 전' 이라는 말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코 앞에 철제 빔이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얼떨떨한 상태에서 겨우겨우 5미터를 걸어갔다고 쳤을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길어야 30초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그 30초 사이에, 그 짧은 시간(찰나의) 사이에! 그는 플릿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실제로 그것을 행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생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자, 이쯤이면, 어떤 반성을 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하고 말이다.




그래. 나는 … 3주 전에 이런 결심을 했다. 앞으로는 열심히 공부해야 겠어! 뭐든지 열심히 해야지! 그런데 역시나 쉽지 않다. 1주 전에는 이런 결심을 했다. 요즘들어 낮에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밤에는 뭐라도 좀 하자! 그런데 역시나 쉽지 않다. 그리고 어제는 이런 결심을 했다. 그래! 이제는 달라져야지! 뭐라도 해야되는데… 뭘 할까… 음… 그래 홍콩 영화를 많이 못 봤으니까 홍콩 영화를 보자. 그리고 글을 쓰는거야! 그런데 역시나 쉽지않다.




하지만 플릿크래프트를 보라.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결심한 (장대하거나 사소하거나) 것들을 보라. 그리고 다시 플릿크래프트를 보라. 30초 사이에 그가 무엇을 결심하고 행동하는지를!




내게 부족한 건 철제 빔일까? 내가 맞아 죽을지도 모를 철제 빔 말이다. 아, 그런데 이건 좀 살떨리는 일이다.




플릿크래프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는 새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이 부분에서, 플릿크래프트의 이야기가 끝난 부분에서 스페이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번째 부인의 외모는 첫 부인과 달랐지만, 두 사람은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 그래서 자신이 결국 타코마에 두고 떠난 것과 똑같은 생활로 빠져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끝난 부분에서 시작된다! 기대하시라!) 그 사람은 철제 빔 사건 때문에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빔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빔이 떨어지지 않는 생활에 인생을 맞춘 거죠." p86




바로 이 부분!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이야기는 절정에 달하며, 처음 이 소설을 읽던 순간에 내게 와닿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 독자들은 이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코 앞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철제 빔을 떠올리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언제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새로운 나가 되리라! (제발, 철제 빔이 코 앞에 떨어지기를! 머리 위는 너무하다!)




그러나 잠깐! 어디까지나 이러한 감상은 나-독자의 감상에 불과한 것이고, 샘 스페이드의 생각을 좀 더 살펴보자. 찰스 플릿크래프트 혹은 찰스 피어스는 자신의 인생이 새로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샘 스페이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샘 스페이드의 생각으로는 찰스 플릿크래프트는 잠깐 인생의 본래의 길을 찾았다가 다시 인생의 벗어난 길로 돌아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샘 스페이드가 했던 이야기의 순서를 바꿔보면 확실해진다.




"(그가 스포케인에 정착하고 나서는) 빔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빔이 떨어지지 않은 생활에 인생을 맞춘거죠."




"그래서 자신이 결국 타코마에 두고 떠난 것과 똑같은 생활로 빠져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샘 스페이드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결국 플릿크래프트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즉, 찰스 피어스는 찰스 크래프트 일 뿐이다. 찰스 크래프트는 찰스 피어스가 될 수 없다. 누구도 바뀔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면, 쉽게 지나치게 되는 이러한 면이 이 이야기의 하드보일드한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자리에 머물러야 할까? 생각만 해도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지고, 우리의 삶 위로 쌩쌩 부는 찬 바람에 몸을 떨어야 할까? 




아니, 한 발짝 더 나아가자.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끝난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나의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플릿크래프트는 스페이드와 이야기 하기 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플릿크래프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첫번째 가족에게 편하게 살아갈 재산을 남겨 주었으며, 자신의 행동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그런 합리성을 스페이드에게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답답함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그 합리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쨋건 처음으로 그런 시도를 했다." p84




그리고 곧 바로 스페이드의 이런 말이 나타난다.




"나는 이해했습니다." 스페이드가 브리지드 오쇼네시에게 말했다. "하지만 플릿크래프트 부인은 그러지 못했죠.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어쨋건 결국 잘 끝났어요." p84




이 부분은 약간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이드가 이해했다는 것이 플릿크래프트가 한 행동 (첫번째 가족에게 충분한 재산을 남겼으므로 떠나도 된다는 것)의 합리성에 대한 이해인지, 플릿크래프트의 얼굴에 사랑스러운 상처를 낸 철제 빔의 의미에 대한 이해인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철제 빔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쪽으로 나아가기로 하자. (어쨋거나 재산을 남기고 떠났으므로 그는 떠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소설을 형편없는 책으로 만들것이다.)




플릿크래프트-본인이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스페이드-타인이 이해한다. 샘 스페이드의 비관적인 인생관 혹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오해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의 섣부른 판단, 나는 이해했습니다! 에서 말이다.




플릿크래프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어려움 그리고 답답함을 겪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경험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철제 빔의 경험을 설명 없이도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릿크래프트는 그냥 그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변했고, 그 경험이란 이미 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플릿크래프트는 답답함을 안고 그 경험에 대하여 굳이 이야기를 한다. 그는 왜 이야기를 하는가. 왜 굳이 이야기를 하는가. 플릿크래프트는 스페이드를 이해시키고 싶다. 스페이드에게도 새로운 인생에 대한 비전을 일깨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페이드의 "나는 이해했습니다"란 "그래서 자신이 결국 타코마에 두고 떠난 것과 똑같은 생활로 빠져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샘 스페이드는 자신의 코 앞에 철제 빔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아랑곳 않을 것이다. 그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가던 길을 갈 것이다.




이 세장 분량의 짧은 이야기는 스페이드와 플릿크래프트의 인생관, 정 반대되는 두가지 인생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라고 말하는 플릿크래프트와 사람은 바뀔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스페이드.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으며 스페이드를 추적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스페이드를 관찰하게 되며, 결국에는 스페이드 그 자신이 된다. 어쨋거나 그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페이지가 넘어가며 플릿크래프트는 잊혀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이 자리의 주인공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플릿크래프트이니 말이다.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살펴보자,





"플릿크래프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첫번째 가족에게 편하게 살아갈 재산을 남겨 주었으며, 자신의 행동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그런 합리성을 스페이드에게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답답함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그 합리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쨋건 처음으로 그런 시도를 했다." p84




나는 어디까지나 샘 스페이드는 플릿크래프트의 말을 제대로 이해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페이드 자신만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플릿크래프트의 서투름이 한 몫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 시도!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릿크래프트 역시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플릿크래프트의 이 첫 시도가 첫 시도 그 자체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스페이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 것이다.




언제나 첫 시도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처음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둔다. 첫 만남. 첫 사랑. 첫 이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나아간다. 첫 시도 뒤에는 두번째 시도가 있고 두번째 시도 뒤에는 세번째 시도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시도를 끝내지 않는 한 우리는 점점 더 익숙해진다. 답답함에서 벗어난다. 그리하여 우리가 도달하는 그곳에는…




만일 플릿크래프트의 이야기가 첫 시도로 그치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로 이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점점 더 자신의 경험에 대한 설명에 익숙해진다면, 그 순간, 플릿크래프트의 이야기를 듣는 스페이드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 때도 여전히 "나는 이해했습니다." 라고 말 하고 있을까. 적어도 "나는 정말로 이해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감사합니다!"하고 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여운 주인공 스페이드에게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플릿크래프트는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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