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미리내별
- 작성일
- 2011.2.13
빵굽는 타자기
- 글쓴이
- 폴 오스터 저
열린책들
얼마 전 영화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적이 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남은 밥이 있으면 좀 주오”라는 메모 때문에 그녀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시인이나 작가,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물질 풍족시대의 그늘에서 싱그러운 젊음을 꽃피워야 할 재능있는 작가가 그것도 한창의 나이에 자신의 방에서 홀로 죽어가다니… 이 자리를 빌어서 그녀의 명복을 빈다. 부디 천국에서는 배고프지 않고 맘껏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를… 그런데 이러한 실정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도 역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작가로써 먹고 살기가 힘든 일인가 보다. 폴 오스터는 자신의 자서전적 소설인 이 책에서 젊은 시절 글을 써서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경험을 쓰고 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5쪽)
이렇게 서두를 쓰고 있는 폴 오스터는 자신의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자신은 열예닐곱 살 때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노라고 말이다. 작가가 되는 것이 그에겐 필연이었는가 보다.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6쪽)
열예닐곱에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고3이 되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수능이나 내신 점수에 맞추어 자신의 전공을 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더라도 점수가 안되어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선택되는 것이므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혼돈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글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폴 오스터의 말을 빌리자면 “신의 호의를 얻는” 운 좋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이다. 작가에게 자유는 어떤 영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긴 이건 작가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와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필수 요소인 것 같다. 폴 오스터도 글을 쓰면서 먹고 살기 위하여, 정규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시간제로 일하게 되는데 이는 순전히 글쓰는 자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토막으로 일하다 보니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 항상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니 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결국 아르바이트에 치여서 글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는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게 된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는 주로 번역 일이었으니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글 쓰는 일과 그리 멀리 떨어진 일은 아니니깐 말이다.
이 책의 뒤에는 자서전적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신이 힘든 시절에 썼던 세 편의 희곡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 <정전>, <숨바꼭질>과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개발했으나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아 사장되어 버린 카드게임인 <액션 베이스 볼>에 대해서 덧붙여 있다.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하여 “이렇게 작가가 되는 일은 힘든 것인데도 작가가 될 텐가? 매일 배고프고 가난에 허덕이고, 결혼한 아내와 아이는 이 가난을 견디지 못해 떠나고, 혹시나 글을 쓰더라도 헐값에 팔아 치워야 한다네. 이 고생이 평생 갈지도 모른다네. 뭐? 그래도 작가를 하겠다고? 정말 각오는 된 건가?”라고 재차 확인하는 것 같다. 운이 좋다면 폴 오스터처럼 유명해져서 많은 작품을 남기면서도 돈도 벌 수 있겠지만, 그런 그에게도 유명해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힘든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나마 작가가 살아있는 동시대에 사람들로부터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도 행운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작가가 죽고 나서야 혹은 한 세기 정도 지난 후에야 주옥 같은 글을 인정받는 작가도 있으니깐 말이다. 하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후대에 이름을 남기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은 남길 수 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과 같이, 재능을 다 꽃피우기도 전에 죽어가는 일과 같은 비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들을 죽음으로 몬 것은 이 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들을 위한 개인 혹은 기업의 후원이나 문화재단 설립 등을 통하여 지원해주고 후원해 주는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먹고 살기의 걱정 없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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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22
- 작성일
- 2011. 2. 17.
@도담별
- 작성일
- 2011. 2. 16.
- 작성일
- 2011. 2. 16.
@異之我...또 다른 나
- 작성일
- 2011. 2. 19.
- 작성일
- 2011. 2. 19.
@아름다운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