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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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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글쓴이
폴 오스터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7.6 (68)
하얀장미
폴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위 명문 예술대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가지고있는 대학생들과의 엠티에서. 조금은 가슴 떨리고 우월감과 열등감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며 안주는 소세지와 술은 맥주가 습기찬 방에 놓여진 젊은 날의 일상이었다. '디비디비딥'같은 초딩적 놀이보다 그날은 어쩐지 '내 인생의 책'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제로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 유행하던 비니를 쓰고 있던 뿔테안경의 한 소년이 말을 꺼냈다. '니네 폴 오스터 아냐?' 신트림이 나올 즈음 그리고 졸음이 와 꾸벅꾸벅 졸때 난 그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폴 오스터는... 내가 읽으려고 읽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4차원적 작가였기 때문이다. 황량한 도서관에 폴 오스터와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 가운데 폴 오스터는 말했다. '너 내가 말하려는 것 다 이해할 수 있냐?' 그는 날카로운 다크서클과 꼬질꼬질한 스웨터, 타자습관으로 인해 굳은 살이 박힌 세번째 손가락마디를 내놓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체 '아니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왠지 그의 소설들을 보고있자면 오줌이 마려울 것같기도 한 긴장감이 탱천했다. 내 삶의 8할을 차지했던 지적 허영심은 그의 소설에서 발휘되지 않았다. 내게 폴 오스터는 콤플렉스였다. 마호가니 테이블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탄 후, 배경음악은 쇼팽을 들어며 잔뜩 어깨에는 힘을 주고 내려오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읽었던 대부분의 한국문학, 고전문학에의 독서법은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뇌 속의 나사가 흔들흔들할때까지 풀려있고 편한 상태에 파자마 차림으로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이런 그와의 독대가 필수불가결해진 것은 주변에서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폴 오스터 추앙 독자군>의 징집명령이 나에게도 다다랐기 때문이다. 스노우캣, 온갖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서점, 헌책방, 교수, 친구들...그들의 세력은 점차 확대되었다. 나는 무서웠다. 4차원에 빠져들기가. 그러던 나는 예전에 선물받은 검은 양장의 <폐허의 도시>를 꺼내들었다. 이상하게 폴 오스터 책을 선물로 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아마 '그들'의 전략일테다. 읽었다. 이상하게 나는 마법처럼 빠져들기 시작했다. 결코 매력적인 소재라고 볼 수 없는, 이제는 너무 많이 쓰여져버린 세계종말이라는 주제가 그 낡은 화두가 멋지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것이 뻔히 다 보이는, 그래서 고집세 보이고 귀여운 작가의 타자치는 손가락이 상상되었다. 다음은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 기실 이 영화보고 폴 오스터에 관심이 안간다면 정말 인간 아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일상생활의 희귀한 에피소드가 참 따뜻하게 전해온다. 너무 평범한 일상들이 너무 특별해진다. 세번째 읽은 것이 바로 이 <빵굽는 타자기_젊은 날 닥치는대로 글쓰기>다. 정말 폴, 작가되기 위해 고생 마이 했다. 프랑스어 번역에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출판일에 멕시코 찍고 파리 돌고 뉴욕까지. 존 레논도 만나고 마피아 같은 제작자도 만나고 아이도 낳고 배에 승선해 음식도 만들고 카드게임 팔기위해 장난감박람회가고. 정말 종횡무진 열나게 뛴다. 그리고 열나게 쓴다. 닥치는 대로 쓴다. 90만원에 소설을 팔고 몇 일 견딜 수 있는 무명작가의 눈물어린 경험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도 아니 미국에도 중국에도 세계에 수십만 수백만이 있겠지. 아마 지금쯤 나처럼 서평을 쓰거나 시나리오를 쓰거나 교정을 보면서 눈물 젖은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언젠가는...을 유행가처럼 읖조리고 있겠다. 그래서 <빵굽는 타자기>는 그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열나게 쓰면 된다. 닥치는 대로 쓰면된다. 그럼 폴 오스터가 된다.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인간은 그 길로 가라. <폴 오스터 교>는 그렇게 오늘도 말씀을 전파하고 계시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길을 가려는 우리들의 타자기를 치켜세워주고 있다.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엄마의 눈치를 보며 겨드랑이에 땀날정도로 글을 쓰고 있는 동지여, 힘내라. 우리에겐 폴 오스터가 있다.

[인상깊은구절]
'조, 괜찮아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고통과 낭패감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조금도 괜찮지 않아.'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꼴이 말이 아니군요.' '그래, 자네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말인데, 자네가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네.' 이렇게 말하고는 느닷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감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자네 집으로 데려다주게,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자네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주게.' 너무나 뜻밖의 요구여서 나는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커피 한잔이나 수프 한 그릇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안돼요.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건 여자지 남자가 아니라고요. 미안하지만 그런 짓은 안해요.' 그가 다음에 꺼낸 말은 내가 이제껏 들은 말 중에 가장 훌륭핟고도 재치있는 말로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는 1초도 낭비하지 않고, 낙담하거나 섭섭해하는 기색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고, 어깨만 한번 으쓱하는 것으로 내 대답을 받아넘기고는, 쾌활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물었고, 그래서 대답한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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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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