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리뷰

waterelf
- 작성일
- 2011.3.1
버마 시절
- 글쓴이
- 조지 오웰 저
열린책들
시작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서
대영제국의 경찰로 버마에서 제국주의 앞잡이로서의 삶을 살아 본, 조지 오웰이 쓴 <버마시절>에서 나오는, 서른 다섯 살의 노총각 목재상인 플로리는 유일하게 원주민인 버마인에게 동정적인 백인이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진화론에 근거를 둔, 개발을 통한 문명화 논리에 의해 <민족개조론>을 저술한 춘원 이광수나, 독립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우남 이승만처럼, 버마인 의사이자 카우크타다 읍(邑)의 교도소장인 베라스와미는 당신은 사업하러 이곳에 오셨다고 말했지요? 당연합니다. 버마인들이 스스로 무역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기계와 배를 만들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지요. 만일 영국 사람들이 이곳에 없다면 버마 정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즉시 정글을 일본에 팔아먹을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정글을 송두리째 오려낼 것이니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죠. 대신 당신들의 손에 맡기면 정글은 실제적으로 좋아지죠. 그리고 당신네 사업가들은 우리 국토의 자원을 개발하고, 관리들은 우리를 문명화시켜 당신들 수준까지 끌어올리죠. 이것은 자기희생의 빛나는 기록입니다.1)라고 말하며 영국의 식민통치를 옹호한다.
플로리가 버마에서 “백인 나리”로 생활하였는데, 젊음을 낭비하고서야 비로소 그의 허약한 지성은 조국(祖國)의 행태가 분명히 자비롭긴 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약탈인 전제 정부2)임을 깨닫게 되었다.
불행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수많은, 나약한 지식인처럼 그도 다른 백인들과의 형식적인 유대관계를 끊고 홀로 버마인과 살아갈 용기가 없었기에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단지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의 작가인 다케야마 미치오[竹山道雄]는 <버마의 하프>에서 미즈시마 상병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인간상을 그려냈다.
미즈시마 상병은 수염이 짙은 다른 일본인과 달리 버마인처럼 수염이 옅어서 버마인 승려 흉내를 내면서 자주 정찰을 다녔는데, 종전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않고 옥쇄(玉碎)하려는 다른 부대를 설득하러 갔다가 부상을 입고 식인종 부락에 의해 구조(?)된다.
다행히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식인종의 입으로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난 미즈시마 상병은 아내가 될 뻔 했던 식인종 추장 딸이 건네 준 고승의 가사(袈裟)를 걸치고 포로수용소로 되돌아 가는 길에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일본군의 시체와 유골 등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외로움을 대하는 두 사람의 자세
<버마시절>의 플로리는 제국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버마인 정부(情婦)를 두고 백인으로써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출세지향적인 버마인 하급 치안 판사 우 포 킨의 사주를 받은 버마인 정부(情婦)가 벌인 소동으로 결혼을 생각했던 엘리자베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엘리자베스가 출현하기 전의 외로운 상태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 그는 다시 이곳 – 오래되고 비밀스러운 삶 – 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끝장난 뒤, 예전에 속했던 곳으로 말이다.
이러한 생활을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도 잘 참아 왔다. 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들이 있다. – 책, 꽃밭, 술, 일, 매춘부, 사냥, 의사와의 대화.
아니다. 이제 이런 것들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의 몸 속에서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고통을 감내하는 힘, 무엇보다 희망의 힘이 엘리자베스가 온 이후 새롭게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살아왔던, 그럭저럭 지낼 만한 정도의 무기력도 사라졌다. 그러므로 지금 고통을 당한다면 앞으로는 극복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나날이 될 것이다.3)
본디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면 모를까, 한번 가졌던 것을 빼앗기면 더 큰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행복했던 플로리도 엘리자베스로부터 버림받자 더 이상 외로움을 견딜 힘이 없어 권총으로 자살하게 된 것이다.
반면, <버마의 하프>의 미즈시마 상병은 포로수용소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일본군의 시체와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으로 귀환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버마 곳곳에 팽개쳐진 일본군의 시체와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앞으로 영원히 서툰 버마어로 버마인 사이에서 외톨이로 남는 것을 감수한다.
어쩌면 <버마시절>의 플로리보다 긍정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미즈시마 상병에게는 플로리와 달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없다. 그는 단지 버마에서 죽은 일본군의 시체와 유골을 수습하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적극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일본의 자유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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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