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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글쓴이
플라톤 저
문예출판사
평균
별점8.6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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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의 유세가 중의 하나인 한비가 쓴 ‘한비자’의 글 중 ‘세난(說難)’편을 보면, ‘역린(逆鱗)’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역린은 용의 턱 밑에 난 작은 비늘을 말하는데, 용을 자기편을 만들었다고 해도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역린을 건드리는 사람을 죽인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 한비자는 상대 군주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역린’으로 비유하며, 유세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군주의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한다.


 


이러한 ‘역린’의 고사는 한 국가의 군주나 지도자 일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지도층 그리고,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자기가 처한 객관적인 현실을 보고 그에 대한 충고를 듣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보고싶어 하는 현실을 보고, 듣고자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그리고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불편함’을 주는 개인이나 집단을 증오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만큼 ‘불편한 진실’이라는 ‘역린’의 존재를 드러내고 건드리는 사람은 평탄한 삶을 영위하기는 어렵다.


 


아테네의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회를 혼란케하고, 젊은이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는 죄목을 고발된다. 하지만 그러한 피상적인 혐의 속에 숨어있는 그의 죄는 그 시대를 지배하고 여론을 주도했던 많은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그것을 자각시켰다는데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 미움을 받고,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고발인들이 주장하는 그의 혐의의 부당성을 증명해 나가며, 오히려 고발인의 무고를 비난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이러한 일깨움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켰다면서 이러한 자신의 행동으로 파멸에 이를 것임을 예언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무지의 상태’을 일깨우는 것은 그 일깨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감사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그 사람의 증오와 시기 질투의 화살을 받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경험이나 역사적 사실로부터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신책은 아무말 하지 않고,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보신책을 추구하지도 않고, 그러한 그의 행위에 대해서도 사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사람들, 특히 나라를 이끌어가고 여론을 주도해가는 사람들의 허위의식과 무지를 일깨움으로써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이야기 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지식인 또는 철학자의 책무를 말의 잔등에 붙어서 말을 귀찮게 하여 말이 나태해지고 둔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등에’의 역할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등에가 없다면 둔해지고 나태해져서 손해를 보고 마는 것은 결국 말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등에가 없다면, ‘아테네’라는 이름의 말은 나머지 생애동안 줄곧 잠만 자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경고를 통해서 ‘불편한 진실’을 자각하기를 꺼려하는 여론이나 지배층의 경향이 결국 사회를 파멸로 이끌어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등에’의 역할은 지금 세상에 비유하면, 지배계급의 비리와 모순을 폭로하는 ‘진정한 언론’ 또는 ‘행동하는 양심’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불법행위와 부정행위에 정직하게 대결함으로써 여러분이나 다른 대중과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나는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써 법과 정의의 편에서서 표현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죽음을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자신의 말을 몸스 증명하는 것 처럼,  <크리톤>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친구의 탈옥권유를 마다한다. 그리고 <파이돈>에서의 소크라테스는 순순히 아테네의 법률에 따라서 순순히 독배를 마시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 ,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사회를 혼란케 했다는 죄로 고소되어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과, 감옥에서 친구인 크리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법을 고수하고 탈옥을 거부하는 이야기와, 당당하게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면서도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과정이 서사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자신의 피를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수 있는 연료로 기꺼이 제공하고, 자신의 몸을 그 수레바퀴가 후진하지 않도록 막는 고임목으로 거리낌없이 제공한 수많은 소크라테스들이 있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들의 고귀한 희생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는 과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명히 진보를 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소크라테스들이 사라지고, 침묵하는 다수 피지배계급과 전횡하는 소수 지배계급만이 남는다면, 소크라테스가 마셨던 독배와 폭력에 다수의 피지배계급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인본주의적 가치를 내팽겨치고, 경제성장에만 매달리는 지배계급에 의하여 내몰리고 소외되는 서민이 극단적으로 선택하는 자살이 ‘독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자신의 안위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변호가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이 일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발전과 생존을 위해서 왜 필요한지 일갈하는 ‘사자후’였다. 이 글을 보면서, 지배계급의 무지와 허위의식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비판과 담론을 ‘색깔론’과 ‘지역주의’라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올려놓고 자의적으로 무자비하게 재단하고 철저하게 응징하는 현 세태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여론의 다양함 및 비판적 담론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탄압하는 지배층이나 여론 주도계급과 이들의 폭압에 의연히 대항하는 '행동하는 양심'의 대립적 관계가 지속되는 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소크라테스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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