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문학

하루
- 작성일
- 2012.1.17
그리스인 조르바
- 글쓴이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열린책들
나무를 부풀리고 포도 넝쿨을 부풀리고 크레타 여인의 가슴을 부풀리는 따뜻한 남풍, 노토스가 저 건너 아프리카로부터 불어오면 물가에 누운 크레타섬, 자유로운 거인 조르바가 있는 이 섬은 수액을 솟게 하는 그 바람 아래서 다시 생명을 되찾는다. 여행으로 가슴에 품은 꿈을 실현하려 세상의 여기저기를 방황한 그리스의 위대한 거인 니코스 카찬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두번째 읽었다. 첫번째는 그냥 생각없이 읽었는데 읽다보니 어록으로 남길만한 문구들이 가슴을 스치는 일이 몇번 있었고 집중해서 읽기보다는 띄엄띄엄 읽는 바람에 정리의 시기를 놓쳤다. 새로운 마음으로 두번째 읽기를 시도했고 이제서야 글을 정리해보려 한다.
문학속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이 되는 장소를 머릿속에 이미지화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소설의 줄거리와 인물의 심리를 읽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에 속하지만 화산분출로 외로이 떨어져 섬이 된 크레타, 지구에서 가장 먼저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산 토리니가 있는 곳이다. 광범위하게 그리스를 얘기하자면 문학과 예술의 토대가 된 그리스 신화와 고대 올림픽의 나라이고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국민들에게 추앙받는 민족음악가 테오도라 키스의 나라이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유럽발 국제금융위기의 절벽아래로 추락하여 잦은 경제적 분쟁과 갈등이 심화된 곳이기도 하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 바로 이 크레타에 상주하면서 글감을 마련하고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 우조 한잔이면 타고난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조르바들의 뒷담화를 들으며 달리기로 일관했던 하루키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샐비어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면 대지인 오르탕스부인의 불타는 듯한 입술에 입맞춤하고 몽환적 삶에 빠져도 좋을 쾌락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곳, 크레타, 조르바에겐 나의 부불리나만 있으면 만족스러울 그런 곳이 바로 크레타였으리라.
자! 나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찾으려했을까, 소설 한 권 읽고 꼭 뭘 찾아내야만 할까. 그냥 재미있게 읽고 넘어가면 그만이지. 하고 대충 넘어가려 했으나 한줄한줄 문장이 주는 명쾌함과 섬세함에 그것은 단숨에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소설 속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주인공인 나에게 찾아 온 일상의 매너리즘이란 지난 날 스스로 이룬 업과 행적들의 무가치함에, 머릿속에 쌓아 둔 지식의 체계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사건이었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갈 용기나 태도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그에게 정반대의 거친 사내 조르바라는 인물은 세상살이 여행의 동반자로써 중력이 이끄는대로, 관성의 법칙대로 가속도를 내며 삶이라는 숙제에 유연한 춤사위로 해결책을 찾을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의 사나이였다. 자신이 정한 틀 속에서 세상일들이 막힘이 없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현대인의 사고가 종종 아득한 매너리즘과 슬럼프를 통과하지 못하고 일탈만을 꿈꾸다가 유한한 삶을 마무리하는 인간이기에 인생사는 측은하고 비굴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성과 정신의 가치야말로 최고의 덕목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보기도 한다. 이성보다 더 중요한 감성과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일이 각자가 책임져야 할 미덕은 아닐 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전날 밤에 느낀 즐거움이 솟아올라 필경은 흙으로 빚어졌을 내 육체라는 대지에 물을 대어 주는 것 같았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긴 여행으로 지치고 물려받은 짐에 짓눌려 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p343)
왕년의 4대 열강 제독들을 자신의 무릎위에서 주무르던 오르탕스부인도, 버찌를 먹고 싶은 만큼 먹고도 토할 지경까지 먹고 또 먹고 나면 더 이상 찾지 않듯이 인생에서 통과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중독될 만큼 마음먹고 해버리라는 조르바도, 펜과 잉크에만 몰두하여 죽도록 쓴 원고를 구역질이 날 때까지 씹어먹다보면 한 생의 컴플렉스가 해결될 거라는 주인공 나도, 세월이 흘러 어디에도 없을 것 같던 죽음의 그림자가 주변 어느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때 문득 깨닫는 그 이치, 자연 그대로의 삶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죽음과 동일한 것이 아닐까.
나는 먹이를 채는 새처럼 목을 뽑고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는 헤어지면서도 우리의 눈은 하릴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몸매와 몸짓을 기억하려고 하니..... 부질없어라. 몇 년만 흘러도 그 눈이 검었던지 푸르렀던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나 자신에게 대고 외쳤다. 인간의 영혼은 놋쇠로 만들어야 했다. 무쇠로 만들었어야 했다. (p427~428)
이쯤되니 괜시리 슬퍼진다. 하고자 하는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목매어 살다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도 중독될 만큼 해치우고 더 이상 미련없이 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하고자 하는 일도 구토가 날 정도로 하고 나면 몽땅 던져 버리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신을 구원하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 가슴을 스친다. 내 스스로를 구원하는 삶! 그럴려면 수신해야한다. 조르바의 터질 듯 외쳐대던 거친 자유도 내 바탕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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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