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과 명작을 맡다

파란흙
- 작성일
- 2007.2.6
눈먼 자들의 도시
- 글쓴이
- 주제 사라마구 저
해냄
뭔가, 잠들지 못하게 하는 서성거림, 공포를 주는 소설이다. 인간성 상실이라고 하는 정신의 죽음과 심장이 멈추는 생물학적 죽음 둘 모두를 아우르는 백색의 실명. 세상 사람 중 몇몇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가 눈이 멀어 버리고, 더럽혀진 세상 즉 도시는 침묵의 아비규환에 휩싸인다. 지옥의 묵시록이다.
가장 처참한 것은 혼자 눈 뜬 사람이다. 모든 것을 보아야 하는 사람. 눈 먼 자들이 보이지 않으므로 사람의 주검을 옆에서 날고기를 뜯어먹을 때 차마 보여서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의 고통, 속물이나 비열한 인간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은 숱한 명작에서 되풀이되는 이야기이지만 이번 것이 더 처절한 울림을 갖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스탠드를 끄니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세상이 새까맣다. 보이지 않는 허공을 응시하며, 백색 실명과 깜깜한 실명 중 어느 것이 나을지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갑자기 실명의 공포가 엄습한다. 벌떡 일어나 더운 물을 받는다. 온갖 오물과 피바다를 끝없이 기어다녔던 그들이 퍼붓는 비에 몸을 씻었듯이 나도 그래야 겠다는 강박을 느낀다.
아직 살만할 때, 아직은 눈이 성성할 때 백색 실명을 예방하자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눈 멀고야 진실을 볼 수 있었던 많은 이들도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는 자조적인 감상에 휩싸인다.
사람이,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양심을 담보한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싶다. 생각이 빠져나간 몸으로 돌아다니는 이들. 나는 좀비 영화가 제일 무섭다. 임산부, 노약자는 안 보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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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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