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Ol
  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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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파리 5구의 여인
글쓴이
더글라스 케네디 저
밝은세상
평균
별점8 (75)
깽Ol

 


 


 


살아있는 한 삶은 끝없이 계속된다.


 


한순간에 가족,직장 할 것 없이 모든걸 다 잃어버린다면 그 현실에서 오는 막막함은 어느 정도일까? 단순히 백수 날건달로 잠시잠깐 머무는게 아니라 사회에 다시 발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신뢰가 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다면 그 삶의 우여곡절을 어떻게 건뎌내려고 발버둥칠 수 있을까 싶다. 여기 한순간에 인생이 끝난거나 마찬가지인 한 남자가 있다. 부도 명예도 지위도 가정도 모두를 잃은 남자. 그래서 소설이 주는 우울함은 시작부터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도가도 끝없이 계속되는 어지러운 미로속 처럼 주인공 해리의 인생은 상류수에서 고여서 썩어버린 물과 다름없는 하류인생으로 전락해버렸다. 그에 그 시궁창 인생을 벗어나고자 발악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neo-picaresque 소설 형식으로 서술되 있기에 읽는 나까지 어이없게 뒤바껴버린 그의 인생에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물론 모든 일의 원인은 어차피 '그 자신'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스스로는 한순간의 실수에 내심 진실함도 있었다고 회상하지만 내가 봤을때는 전혀 실수가 아닌, 어느 중년 남자의 현실의 팍팍함을 탈피하고픈 일탈 정도로 보이는게 문제다.


 


이번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속 주인공은 상당히 답답한 인간이다. 답답하다못해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를만큼 한대 때려주고 싶기라도 한 인물이라 읽는 내내 끈질긴 인내심을 요했다. (휴우.....) 영화학과 교수였던 해리 릭스를 보면 남자들의 '성'에 대한 반응이 다 저랄까 싶게 절제와는 담을 쌓은 인물로 비춰진다. 그렇다고 무분별하다는게 아니라 이성적이고 분별있는 사고는 전혀 없이 그저 감정이 시키는대로 속수무책으로 그 감정에 조종당하는 전형적인 감정적 인물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그에 따른 어떤 현실적인 대응책을 보이기 보다는 그 현실에 막무가내로 끌려가는 답답한 캐릭터. 자신의 주변에서 험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안일함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무능력해 보이는, 아니 생에 대한 의욕 자체가 없는 인물처럼 보이기에-처신하는게 무척이나 답답하다- 절대 동정이나 자비로운 눈으로 봐지지가 않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정 안가는 주인공이다.


 


 


낭만의 꿈은 찢어진 종이조각처럼...


 


과거 해리가 꿈꾸던 그대로였다면 프랑스는 충분히 낭만적인 장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걸 잃어버리고 도피처로 택한 프랑스에서는 낭만 같은건 꿈꿀 수 없는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나날이다. 터키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월세방이 있는 파리 10구와 5구 사이의 파라디스 가에서 해리의 프랑스 생활은 시작된다. 삶이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반듯한 '교수'라는 직함이 있었지만 이제 그는 소설쓰기를 꿈꾸는 돈 없고 배고프고 초라한 인생 낙오자이자  '소설가 지망생'이 되어있다.  이야기 속에서 해리 자신은 'picaresque 소설'을 쓰고 싶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더글라스 케네디가 작품과 현실의-독자가 한층 더 현실같이 느끼도록- 구분이 모호하게 만드려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듯 하다.  피카레스크 소설을 쓰길(피카레스크 소설에서는 자신이 사회적 위선과 억압,모순을 바로잡길 원하지만) 원하는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실제적으로는 네오피카레스크 소설 형식을 띄며 한 남자가 과연 밑바닥 어디까지 곤두박질 칠 수 있는지 역설적으로 표현된 방식 또한 작가가 의도를 했는지 아닌지는 장담할 순 없지만(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생각이니까!) 비정한 현실에 무릎 꿇어버린 남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인해 앞서도 언급했듯이 읽는 이들이 작품 속에 더 빠져들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제공해준다. 그렇기에 내가 주인공 해리를 보며 느꼈던 답답함(너무나 짜증나는!) 또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이자,  꼭 그렇게 느끼기를 바랬던(?) 것이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소설 속 해결사 같은 주인공과는 다른, 시작부터 끝까지 크게 별볼일 없는..그렇고 그런 주인공을 내세운 것도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함축적인 표현대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찌질한 생활에서 하루쯤 일탈을 꿈꾸고자 찾아간 사교 살롱에서 처음 만난 여인 마티드에게 한눈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쩌면 숨 쉴 구멍이 필요해서 였을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어느정도 자제할만도 한데, 답답한 우리의 주인공 해리는 사랑 앞에서만은 그 어떤 장애물도 거뜬히 무시해주신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쪽박을 찼으면서도 말이다. 이 낯선 묘령의 여인은 어느날 갑자기 해리의 인생에 무단침입해서 그를 정신 쏙빠지게 만들어놓고서 인생 자체를 좌지우지 하려한다. 그렇게... 환상적 여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녀가 실은 자신을 평생토록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줄이야! 한 사람의 인생이 또 한 사람-마티드의 정체는 소설을 읽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그게 반전의 묘미므로 여기서는 애매모호한 신비의 인물로 정의 내리겠다.-으로 인해 조종 당하고 재설계 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유희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과 소중한 가족을 담보로 한다면 더욱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꾸역꾸역 살아내지만. 답답하고 숨막히는 파리 생활에 회의를 느껴갈 때쯤 이 여인을 만난 후부터,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불만을 품고 급기야는 해리에게도 해코지를 하기에 이르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잔인하게 죽어간다. 하지만 소설에서 중요한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해리와 마티드의 불완전한 관계가, 그들의 기묘한 이야기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에 있다. 현실과 비현실, 망상과 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하는 주인공 해리의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은 과연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존재론적인 의문으로까지 거슬러가는데-해리 또는 마티드, 어쩌면 그 둘 모두- 이것은 영혼을 믿고 안믿고의 차이를 떠나 잃어버린-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기 어려웠던- 주인공 해리의 모호한 정체성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마지막까지 현실과 비현실의 작은 틈에서 아슬아슬하게 고뇌하는 그의 삶에 대한 내가 던지는 시선은 그래서 암울한 회색빛을 닮아있다.


 


이번 소설은 기존 더글라스 케네디의 전작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스릴러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전개 방식 자체가 '혹시 오래전 써두었던 습작 작품인가?' 싶을 만큼 전 작품들의 완성도를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개인적으로는 느껴지는 바이다. 그리고 이 사람, 더 냉소주의자가 되어있다. 작가의 작품을 한두 작품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그가 자국인 미국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이고 비판적인지 소설 속에서 몇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특징은 빠지지가 않는데, 계속 되풀이 되다보니 이제는 좀 많이 거슬린다고 해야하나. 『모멘트』에서 순화 되었다고 느꼈던(미국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 것은 단지, 그 소설이 주는 아련함에서 왔던 나의 판단 착오였을 뿐이었을까.  어차피 소설이라는게 지극히 작가의 개인적 사상과 생각과 스토리를 쏟아내는 공간이라 한다해도 지나치게 편협해 보이고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모습은 지양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정말이지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의 기조 아래 280여 페이지 이후의 반전이 아니었다면 기억에서 쉽사리 스쳐가버릴 정도로 아쉬움만 그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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