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라이팅(리뷰)

짜라투스트라
- 작성일
- 2007.4.15
전체주의의 기원 1
- 글쓴이
- 한나 아렌트 저
한길사
맑스의 『자본Ⅰ』권 「본원적 축적에 대하여」장(章)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지를 서술한 유명한 장이다. 인간이 특정한 조건아래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과정, 그것은 자기 토지에서 멀쩡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서 생존수단을 강탈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으로 몰아갔던 역사였고,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 국가적인 폭력을 동원한 역사였으며, 그렇게 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본주의체제에 적합한 노동자로 만드는 역사였다. 자본이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리라.
20세기의 사상가 아렌트는 반듯해 보이는 평면의 굴곡과 주름을 통해, 특정한 조건에서 전체주의가 발생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우리는 화폐경제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정당화하여 그것이 발생했던 당시의 조건을 이해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체주의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너무나도 크게 벗어나버려 이해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발생한 조건을 살피지 않는다.
한 인종의 완전한 말살을 목표로 하여 전례 없는 피해자수를 기록한 전체주의 앞에서 그것을 자세히 응시하지 못한 사람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된 비극으로서만 회상할 때 전체주의는 재현될 우려가 있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이해력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빨리 잊으려는 경향을 갖는 한 더욱 그렇다.
그래서였을까, 아렌트 자신도 이러한 전체주의의 특성 때문에 사건을 인과론적으로 결정화시키는 것을 피하고 있다. 가령 삼별초의 항쟁조차 근대민족국가수호의 시금석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오늘날 역사의 현실이라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마저 정당화시킨다면 그것 자체가 역사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녀가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지반으로 ‘반유대주의’, ‘제국주의’를 들었을 때, 그것만이 전체주의를 결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들이 전체주의로 결정화 되는 과정을 말하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끈 전체주의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가.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은 다른 사회 집단과는 다른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특수한 집단으로 존속하였다. 하지만 법 앞에서의 평등에 기초한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계급 제도의 불평등에 기반한 새로운 물결 속에서, ‘계급’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한 유대인들은 점차 사회와 연결된 끊을 놓아간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었을 뿐, 국민국가로의 통합과정에는 하나의 장애물이자,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로서 여겨진다. 인종청소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아울러 제국주의와 함께 처음 등장한 ‘팽창’의 개념은 새로운 정치구조를 가져왔다. 화폐와 같이 단일화된 척도에 모든 것이 비교 가능해짐에 따라 더 이상 질적인 차이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양(量)으로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기에 무한한 증식만이 유일한 목표가 된 것이다.
정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지역적이고 제한되어 있으며 그래서 예견이 가능했던 기존의 국가들은, 무제한적인 권력 추구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원대한 목표 속에서 개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질적이고 다양한 정치공동체들은 팽창의 장애물로서 제거되며, 개인의 특수한 현실 역시 하찮은 것으로 오그라들거나 팽창의 흐름 속으로 가라앉아버리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세계와 고립될 때, 전체주의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세계와 관계를 맺지 않는 고독한 인간이라는 것. 한편은 기존의 상식적인 세계로부터 뿌리 뽑혀 무용지물이 되어 피해자로서 살해되고, 다른 한편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유대감 없는 외로움에 집단적인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전체주의 운동에 투신한다. 공동체적 관계를 상실한 인간이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과정은 의외로 담담하다. 특히 미래가 암담하게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승리와 성공 자체를 장담하는 전체주의는 그만큼 쉽게 위안이 된다.
공동체의 상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네카가 이 말을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라고 번역했고, 아퀴나스는 두 말이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것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인은 ‘폴리스(polis)’와 ‘오이코스(oikos)’로 나눠서 생활했는데, 폴리스에서는 공적인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정치가 이뤄지는 영역이었던 반면, 오이코스는 생존에 필요한 살림살이의 영역이었다. 물론 폴리스의 영역에 사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것은 비난받을만한 행동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두 개념을 헷갈리는 것은 자유인과 노예를 혼돈 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근대사회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경제학이 국가의 최고 학문이 되며, 공적인 것으로 발휘되던 정치 또한 사적인 사건들과 섞이게 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생존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상실하게 된다. 개개인 스스로가 ‘주도’하고 ‘시작’하던 삶이 아닌, 사회에서 정해준 길을 따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의 변화. 이처럼 존재의 이유와 근거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행위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의사를 밝힐 권리를 빼앗겼다.
노예가 인간이 아닌 것은 자유를 빼앗겨서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예는 주인과의 관계라도 맺었음을 미뤄볼 때, 사회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빼앗긴 대중의 무리는 노예보다 못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쓸모없어지는 상황이 만들어 졌을 때,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전적인 작업이 수행될 때, 비로소 전체주의는 태동하기 시작한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