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세이

금비
- 작성일
- 2012.7.16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글쓴이
- 루이스 세풀베다 저
열린책들
낯선 배경, 발음이 쉽지 않은 지명과 이름, 밀림, 원시 부족 등 라틴 문학의 냄새가 물씬 난다. 20세기 초반, 장소는 아마도 아마존일 것이다. 서서히 개발이 시작되고 밀림 개간을 장려했던 에콰도르 정부의 이주민 정책에 따라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노인 이름1))는 아내와 함께 고향을 떠나 밀림 개간에 동참한다. 노인의 회상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밀림까지 왔고 밀림의 원시 부족 수아르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이주민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야기 구조와 등장인물은 단순하다.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를 초과한 개간사업을 조롱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는 재앙을 가져온다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겨있다. 뻔히 작가의 의도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여전히 의미 있고 많은 독자들이 손가락을 치켜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화자가 노인듯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묘사되는 점, 이야기 전개가 복잡하지 않다는 점, 배경이 미지의 세계인 밀림이라는 점,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 구성이라는 점, 그리고 인간과 짐승의 대결구도라는 독특한 대립이라는 점이 아닐까.
노인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이 원칙은 밀림의 원시 부족인 수아르족과 함께 생활하며 터득했기 때문에 그는 밀림이 경고하는 메시지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노인의 즐거움이 자연 속에서 야생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복선이 깔려있다. 바로 그가 ‘읽을 줄 안다’는 것 즉 노인이 문맹이 아니라는 점인데 노인이 수아르족으로부터 떠나 이주민 마을에 정착했다는 설정 자체가 작가는 노인을 문명인으로 이미 분류해놓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개발과 보존 사이의 경계, 원시와 문명의 경계에서 노인이 중재자 역할을 하게 만들어 놓았다.
어느 날 노인은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 것이 없었다.”(72p)
읽을거리를 찾아 잠시 도시로 나가본다. 노인의 취향에 맞는 장르를 찾았다. 바로 ‘사랑이야기’였다. 이후 노인의 가장 큰 즐거움인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연애소설을 탐닉한다. 닥치는 대로 읽어 댄다 라기 보다 한 단어씩, 한 문장씩을 곱씹고, 상상하고, 읊으면서, 잘근잘근 해체했다 조립했다 한다. 사랑은 만국 공통어다. 사랑 이야기에는 남녀노소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랑의 달콤함에 눈을 감는다. 아마 밀림도 사랑의 원칙대로만 움직인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이주민 마을의 읍장으로 등장하는 ‘뚱보’는 자신은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밀림의 원시 부족인 수아르족 등을 미개인이라 치부하며 굉장히 멸시한다. 읍장 앞에서는 ‘읍장 각하’라고 부르지만 마을 사람들끼리는 ‘뚱보’라고 부르며 겉으로는 비위를 맞춰주는 척 하다가 돌아서서는 읍장이 누군가의 손에 죽길 바란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의지하는 사람은 노인이다. 노인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마을 사람들은 신뢰 한다. 그러다보니 읍장의 눈에는 노인이 가시 같은 존재다. 뚱보 읍장이 악랄하고 교활한 인물이긴 하나 읍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하려는 것도 분명 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읍장의 모습이 때론 연민이 일기도 했다.
양키(이 책에서 백인을 양키로 묘사)들과 노다지꾼들이 밀림을 함부로 들쑤시고 다니고 정부가 밀림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 서서히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위기에 닥친 마을에 읍장은 할 수 없이 노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작가는 재앙의 메신저를 살쾡이로 설정해 두었다. 살쾡이는 ‘고양이과’답게 영악하고 머리가 좋은 동물이다. 살쾡이 새끼를 건드린 양키 사냥꾼 때문에 암살쾡이는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하고 이 복수를 잠재우기 위해 노인을 중심으로 수색대가 파견된 것이다. 결국 노인과 암살쾡이의 1:1 결전에 이른다.
담담한 문체로 자연(살쾡이)과 인간(백인,개발자, 거대자본가 등)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뜬금없을 것 같은 연애소설 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을 데려다가 중재자 역할을 하게 한다. 지혜와 연륜의 상징인 노인과 인류의 모든 문제 해결의 답인 사랑(연애소설)을 통해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싶었나보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실제로도 행동하는 지성으로 불리며 환경운동 등에도 활약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지만 쉬우면서 잘 읽혔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감동을 선사한다. 매력적인 작품이다.
1) 노인의 아내 이름은 더 길었다.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
왜 이렇게 긴 이름을 쓸까? 그리고 작가가 이 긴 이름을 일부러라도 몇 번씩 쓴 이유는 무엇일까?
여봉달, 혼자의 시간을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책 한 권 읽을 수 있었네요.
(1박2일로 아이 데리고 계곡 놀러 가준 남편에게)
살쾡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어른 살쾡이, 아기 살쾡이..
왕뱀이 등장하길래 찾아봤다.
오....王자를 그냥 붙인 게 아니었구나...ㅠㅠ
밀림은 무서워..

- 좋아요
- 6
- 댓글
- 26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