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깽Ol
- 작성일
- 2012.10.29
죽은 시인의 사회
- 글쓴이
- N.H클라인바움 저/한은주 역
서교출판사
현재 우리는 스펙쌓기와 함께 끝없는 무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세계는 어떠할까요. 최고가 되기 위해 사교육에 열광하고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내로라하는 명문이라 이름 붙은 곳으로 발을 뻗어 나가기 바쁩니다. 이 현상이 현시대에만 국한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교육이라는 배움의 지식을 습득할 때부터 인간은 경쟁의 순환 속에 내던져져 있었습니다. 선의의 경쟁에서 차츰 독보적인 나로 거듭나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가 되기 위해 과열 경쟁의 악순환이 거듭됐습니다. 누구나 최고가 되길 바라고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 수순을 아직 자아 형성도 제대로 되지 않은 어린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기란 너무 가혹하다 생각지 않으십니까?
저의 10대 시절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주저함이 없이 이 책을 선택하겠습니다. 원작은 영화이지만 저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접했기에 버킷리스트에 '책' 으로 선정하기로 했어요. 세월의 무게에 따라 남다르게 다가오는 책이 있습니다. 10대와 20대 그리고 현재... '버킷 리스트'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저의 뇌리에 스치고 간 책은 고전문학도 아니고 위인전도 아닌, 이 작품밖에 없었습니다. 어려도 감동은 알 수 있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웰튼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또래 아이들에게 공감하고 그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키팅 선생님을 보면서 저런 선생님께서 현실, 내 가까이에도 존재했으면 하고 무척이나 바랐던 기억이 있네요.
10대 시절에는 주입식 교육에 힘입어(?) 독서 또한 어른들이 권하는 책, 위인전, 전기 등을 주로 읽었습니다. 아마 이 책은 10대 중반 또는 후반 즈음에 저 스스로 찾아서 읽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느냐고 묻는다면 학생의 신분에서 오는 압박감에 의한 동질감, 그로부터 해방감을 원하는 처지에 있던 게 『죽은 시인의 사회』를 공감하며 읽게 한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10대 시절 아무리 반항했다고 한들, 저는 어른들의 울타리 안에 있는 미성년에 불과했습니다. 부모님, 선생님들이 하라는 대로 하기는 싫어하면서 억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거죠.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존 키팅이라는 인물은 제게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니, 조금 많이 달랐다고 해야 하는 게 맞으려나요. 미래를 위해 공부하라는 어른들은 많았지만 내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즐겨야 한다는 말을 해주는 어른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엇나가면 화살같이 귀에 박히는 말이 있죠.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아이들은 좀 엇나가도 되고 반항해도 되고 사고도 치고 적당히 놀기도 하고 그렇게 자라야 하는 것 같은데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의자에 파묻혀 공부하는 것만이 커서 '뭐라도' 될 것처럼,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을 살 것처럼 지레 겁을 주는 어른들 속에서 살았었고 요즘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작품이 빛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학생을 공부만 해야 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물론 학생은 공부해야죠^^) 한 인격체로서 바라보고 삶을 뜨겁게 살아가야 한다 말해주는 어른이 거기 있었으니까요. 감동이 큰 만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 작품 속에는 최고가 되기를 갈망하는 어른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 선생들의 욕망을 대신 실현해줄 기계적이고 인형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자식들이 오로지 최고의 성적을 거둬 최고의 명문대학에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은 거들떠도 보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혹독하게도 공부시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스파르타식 교육의 강행군이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재미있느냐 하면 그도 아니에요. 과거의 교육방식이 그렇듯 오로지 주입, 암기, 세뇌식 수업시간이 지겹도록 아이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그런 웰튼-헬튼- 아카데미에 구원자가 찾아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척의 표류하는 배입니다. 어른들의 의무는 이제 막 돛단배를 띄운 자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좋은 나침반을 쥐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의 목적지까지는 스스로 찾아가야 하지요. 가끔 조타수 역할을 해주는 정도가 어른들이 할 몫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선장과 조타수의 역할, 나침반까지 꼬옥 쥐고 멋대로 목적지로 이끌려는 어른들로 들끓습니다. 그래서 존 키팅이라는 선장이 이 아이들을 찾아온 것이지요. 스스로 자신을 선장이라 일컫는 그는 교육 이전에 아이들의 인성을 먼저 닦으려 합니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최고라는 목표보다는 자신의 삶을 먼저 바라보라고 소리칩니다.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할 게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고 외칩니다.
웰튼 아카데미에는 어른들의 욕심에 세뇌당한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잃고 있었습니다. 주체적인 의지는 잃어버린 채 의존적이고 의타적인 아이들로 자랄 뿐이었지요. 아이들이 원하는 꿈이 아닌 어른들의 꿈을 주입하고 이루도록 채찍질을 해댔습니다. 아이비리그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를 강요하는 닐의 아버지, 형과 같은 수재가 되기를 갈망하며 본인의 의사는 묵살된 채 웰튼으로 전학 오게 된 토드와 그 밖의 꿈을 잃고 날개를 꺾여버린 아이들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비상하게끔 유도해주는 키팅 선생의 교육관은 지금 현재 우리 시대에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 시절 소년이 그렇듯 이성에 눈떠가는 낙스의 사랑앓이는 약방에 감초같이 청소년 시절에 꼭 있을법한 에피소드기도 했고요.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키팅 선생이 웰튼 재학시절 몸담았던 서클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시를 읊고 낭독하고 그들을 기리며 새로운 자아로 거듭납니다. 용기를 잃은 아이는 자신감을 되찾고 꿈을 실현하고 싶었던 아이는 꿈을 이루려고 발돋움합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언제쯤 입시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언제쯤 여기에서처럼 가슴에 불을 지핀듯한 여운을, 스스로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주체할 수 없는 의지를 만끽할 수 있을까요. 너무도 먼 이야기인가요?
Carpe diem!
영화의 명대사이기도 한 이 문장은 고대 로마의 유명한 시인 퀸투르 호라티우스 플라쿠스의 시 Odes의 마지막 문장인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문은 '오늘을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헛된 기대보다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은 후부터 제 삶의 신조가 되어버린 이 문장을 볼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이 문장을 소리쳐 말하는 존 키팅 선생이 작품 안에 존재하기에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온몸으로 찌릿 전율이 일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10년이 더 훌쩍 지난 시간 속에서도 저의 감각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사춘기 소녀의 감동이 결코 헛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원작이 영화이기에 영상으로 봐야 더 절절한 감동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책과 마찬가지로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를 보며 눈물을 쏟기도 했었고요. 작가 톰 슐만의 경험담을 녹여낸 영화의 시나리오를 낸시 클라인바움이 각색한 것이 이 책입니다. 10대 때는 톰 슐만의 시나리오를 책으로 펴낸 작품을 읽었기에 기억의 망각과 함께 감동의 여운은 여전하나, 새로운 마음으로 이 책을 조우했습니다. 키팅 선생님의 유쾌하면서 자유분방한 유머에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교육 시스템의 폐단에 분노하고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과연 세상을 바꾸려 하는 자는 승리하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키팅 선생님을 영원히 캡틴으로 기억할 제자들과의 눈물 젖은 작별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깨어나고 보아야겠지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요. 참 단순하나 꼭 깨달아야 할 진리입니다. 성공과 명예를 향한 미래지향적인 삶도 나쁠 건 없지만 그에 앞서 참교육의 의미와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까? 오늘이 지나면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내일 웃을 게 아니라 지금, 내일 행복할 게 아니라 지금, 우리는 아름답게 내 삶을 즐겨야 합니다. Carpe diem!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믿기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한 번 해봐. 어서, 어서!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 봐야 해."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中-
죽은 시인의 사회 하면 카르페 디엠과 함께 명대사가 있죠.(아주 많죠.) 영화도 그렇고 책에서 역시 이 마지막 장면에서 폭풍눈물을 쏟았네요. "Oh captin, my captin!" "Thank You Boys, Thank You."
*제 기억에 있던 그 시절의 책은 1990년도에 출판된 모아 출판사의 책인데 이미지 구하기도 쉽지 않네요. 표지 이미지를 보니, 그때의 감동이 다시 한 번 밀려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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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