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깽Ol
- 작성일
- 2013.1.15
템테이션
- 글쓴이
- 더글라스 케네디 저
밝은세상
인간의 가장 은밀하고도 적나라한 욕망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내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모두 잘되기를 바란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같은 말. 그런데 이는 어느 정도 어폐가 있다. 아니 전제가 빠져있다. 우선 내가 잘되고 나에게 좋은 일들이 일어난 그다음에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염원해줄 마음적 여유가 생긴다. 아니라고? 본인은 잘못돼도 괜찮다 싶은 사람이 있을까. 솔직해지자. 없다. 최악이라고 끔찍하다 말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성공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실패해야 꼭대기의 월계관을 내 머리에 씌울 수 있다. 세상은 그런 시스템이다. 약육강식, 먹이사슬을 통한 경쟁의 구축. 여기에는 사회 구조적으로 최고만을 고집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돼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인간이란 무릇 기억되길 바라고 인정받기 바라는 심리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은 개개인이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성공을 향한 욕망의 옳고 그름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성공'한 후 어떻게 변해가는지 좇아가면서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을 낱낱이 그러나 통속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인간의 욕구는 대부분이 비슷비슷한가 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자의 시선이 곧 나의 시선과 일치하는 부분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성공의 이름 뒤에는 권력, 명예, 능력, 돈이 자리한다. 이 네 가지를 갖추어야만 대중들에게 있어서 성공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가장 적합하고 또 보편적인 성공의 요소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힘을 갖추고 있는 1순위는 '돈'이 아닐까 한다. 속된 말로 돈이면 다 되는 세상임은 부정할 수 없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허우적대고 있다. 나름의 지혜로운 지식인들은 금전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고 비겁해질 수 있는 것 역시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이다. 이 지구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 空·自轉 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 테두리 안에서는 성공과 성취에 대한 갈망만이 무한하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이 갈망은 삶을 윤택하게도 하지만 피로하게도 한다. 끝이 없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구란 그렇다. 성취하면 또 다른 목표물이 나타나고 그것을 위해 전력질주의 순환만이 반복된다. 모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라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향한 전제를 갖다 붙인 채로 말이다. '변화는 자연의 선물(122p)'이라는 아우렐리우스의 격언처럼 삶도 변화해야 하는걸까. 정체된 채 변화하지 않으면 낙오자의 삶으로 볼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이도 선택일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된 삶을 목표하고 추구한다. 그 안에 '변화'라고 일컫는 이른바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시기가 찾아온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궁핍한 무명작가로 살아온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하루아침에 스타작가로 급부상한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난 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단시간에 성공의 열매를 품에 안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전철을 밟는다는 고리타분한 선입견은 버리자. 오랜 세월 비루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공의 열매는 그만큼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역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사실 자신이 이룩한 노력의 결실이니만큼 마음껏 즐기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성공의 간판을 등에 업고 성공에 도취해 지난 시절 자신의 주춧돌이 되어주었던 아내와의 파경을 맞게 된다. 너무도 뻔하지만, 아내보다 더 젊고 더 아름답고 더 능력 있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부와 명예와 미모의 애인까지 거느린 소위 말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인사로 조명받는다. 하지만 원래 성공의 달콤함은 절대 길지도 녹록하지도 않은 험난하고 쓴 달콤함이다. 자아도취에 빠져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그의 전력질주는 꽤 볼만하다. 인간이라면 성공한 뒤 대부분 데이비드와 비슷한 인생경로를 따라가는 게 절반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성공은 누군가의 실패가 뒤따르고 사람은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걸 즐긴다. 게다가 성공한 뒤의 데이비드는 나태하고 자만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작가들이 데이비드와 비슷한 경험(의도치않은 표절)을 한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데이비드는 안일했고 성공의 충족감에 함락된 채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간과하고 있었다. 뭐 어차피 이 소설이 전해주고자 하는 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어서겠지만 한 남자의 성공과 몰락, 재도약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괘씸함 뒤에 안쓰러운 마음도 살짝 드는 게 사실이다. 몰락은 자만 뒤에 온다는 말이 있다. 데이비드는 오만했으며 지난 시절을 돌아보려는 마음을 아예 단절해버렸다. 그게 그가 몰락한 이유이다. '부'만 좇고 으스대며 소중한 것들을 돌보지 않았기에 말이다.
"(전략)인생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선택을 하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요. 그게 바로 '인과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결정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면 늘 남 탓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았다거나 사악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면 진정 탓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알게 되죠." - 426p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선택하기에 앞서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면 행하지 않는 게 낫다고들 하지만 부득이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 안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따라오게 되어있고 최소한 자신의 선택 안에서 이루어진 결과라면 순응해야 한다. 성공을 향한 카드가 내 눈 앞에서 얼쩡거린다면 당연히 그것을 손에 쥐어야 한다. 하지만 성공보다 값진 것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함은 자명하다. 무엇인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말이다.
'한 번의 성공이 반드시 '영원한 성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는 카피문구처럼 성공의 또 다른 이름 아니 함정은 몰락이 아닐까. 그렇다 해서 모두가 성공 뒤에 몰락하는 건 아니다. 개인마다 성공의 기준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성공 뒤에 그것을 어떻게 유지해나가야 하는지는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노력)에 달려있다. 또 한가지,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과 도약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데이비드가 고난을 겪는 것은 자신의 자만도 한몫하지만, 그에서 비롯한 오만과 멈추지 않는 돈에 대한 집착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1등이라 부르는 최고의 자리는 영원할 수 없다. 더는 올라설 곳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도태와 자멸도 순식간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몰라서 많은 최고들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건 아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면 더는 경쟁상대가 없다는 안일한 순간적 결핍에 사로잡히기도 하기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와 선택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총합체이다. 이 안에서 누구나 잊기 쉬운, 그러나 기억해야할 삶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역설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삶을 재점검 해본다. 무엇을 지키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 소설 안에서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그러고 보면 국내에 출간된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다. 딱히 그의 팬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아니라고 하기에도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드는 작가다. 이상하게 이 작가와의 인연은 깊은 편인데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은 인정하나 그 능력, 내용의 불편함 때문에 가끔 나를 무척 화나게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내 맘대로 애증의 관계라고 이름 붙였다. 때로 불편한 돌덩이를 투척하지만 나에게 일말의 행운도 안겨주는 그런 작가. 전작인 『행복의 추구』에서 그가 묘사한 여성의 심리와 행복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감명 깊게 읽었었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에는 최고라고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도 재미는 보장된다. 다만 그가 소설 내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작위적-주인공의 고난과 역경의 반복 속에서 탈피하는 부분 등-인 기법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점이 조금 거슬린다고나 할까.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대중의 일반적인 심리를 똑똑하게 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성공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단순하나 정확하게 귀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간간이 나와 더 읽는 재미가 있었고 작년에 재출간 돼 살짝 시끌시끌하기도 했던 사드 후작의 소설이 꽤 중요한 복선으로 사용돼서 오마나!했다. 이 작가는 나의 관심사를 너무 꿰고(?) 있다. 그래서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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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