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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내 인생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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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소립자
글쓴이
미셸 우엘벡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1 (20)
21cbach


사랑을 잃은 삶을 견뎌야 했던 자들


- 미셀 우엘벡, 『소립자』(열린책들)




우리는 서로의 몽타주다


 나는 세계를 지우는 일을 했고


너는 세계를 구성하는 구멍에 빠졌던 가난




의붓아들과 의붓딸의 만남


우리를 낳지 않은 우리의 부모들을 탈각했다


가진 적도 없던 것을 지키려고 애썼고


서로 악수하면서 서로의 손을 혼동해서 침묵했다


- 이이체, 「연인」에서


,


 무인도에 고립되었을 때 고독을 견디기 위해 서너 권의 책을 지닐 수 있게 해준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챙길 것이다. 사랑할 수 없다면, 인간은 누구나 불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쳐 줬으니까. 이 소설은 사랑이 거세된 삶을 견딘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브루노와 미셀은 바람을 피운 아버지 때문에 배다른 형제로 태어난다. 두 형제의 아버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마르크는 첫째 아들 브루노를 알제리의 할머니에게 떠맡기고, 동생인 미셀을 기숙학교에 방치한 채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한다. 마르크는 1964년, 중국군에게 점령된 티베트를 촬영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실종된다. 또한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손자 브루노를 키우던 할머니마저 임종을 맞이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두 형제는 10대 중반에서야 파리의 기숙학교에서 처음으로 조우한다. 어머니가 달랐던 탓에 두 형제는 정반대의 외모와 기질을 지녔다. 알제리의 할머니에게서 키워졌던 브루노는 작고 뚱뚱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애정결핍을 심하게 앓던 브루노는 성적 환상과 자위에 몰두하고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 심각한 따돌림을 겪는다. 친구와 애인이 없는 브루노는 그럴수록 글쓰기와 환상에 매달린다. 반면 동생 미셀은  조각 같은 외모를 지녔고 수학과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그러나 뛰어난 외모와 지능을 가진 미셀 역시 심각한 장애를 앓는다.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미셀은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의 눈물, 타인의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슬픔조차도 수학적인 통계수치나 과학적인 호르몬 분비의 효과로 ‘분석’하려고 하는 ‘괴물’이다. 형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르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닮았다. 상반되면서도 비슷한 두 형제는 끝내 사랑을 얻지 못한다. 사랑을 잃은 대가는 가혹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누구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던 브루노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글’을 얻는다. 끝내 사랑을 얻지 못한 채로 결핍의 산물인 글을 얻었지만 브루노의 삶은 허망하게 종결된다. 분석과 통계를 일삼던 미셀은 뛰어난 과학자가 되지만, 끝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새롭게 진화한 인간 ‘종’을 연구하다가 실종된다.




 나는 이 소설을 세 가지 관점에서 읽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세대론적인 관점에서 읽힌다. 1998년『소립자』가 출간되었을 무렵, 프랑스 문단은 엄청난 세대 논쟁에 휘말렸다. 이른바 ‘68세대’의 자손인 브루노와 미셀, 두 형제의 기행이 프랑스 좌파들이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는 ‘68혁명’에 비판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 프랑스 문단에서 벌어진 이 소요(騷擾)는, 어쩌면 우리에게 결여된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68세대’의 자손들의 결여와 상처로 점철된 삶은 ‘486세대’ 이후의 세대가 통과하는 삶과 겹쳐지지 않는가.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했던 ‘486세대’ 의 자손들은 대가가 미미한 경쟁 속에서 불안에 노출된 삶을 통과하고 있다. 두 형제의 기행을 어떤 은유로 독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금-여기의 2030 세대의 삶과 흡사하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충고였겠지만, 언젠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정한 선배(윗세대)의 기준은 자신이 겪은 상처와 불합리를 후배에게 강요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의 ‘486세대’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청춘을 훈장처럼 안고 후배들에게 이 세계의 가혹함을 무작정 견디라고 주문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움켜쥐기 위한 불안을 감추는 것은 아닐까. 세대론적인 상징으로 독해할 때 이 소설은 프랑스보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개인의 실패를 자신의 능력 탓으로 돌리는 기성세대의 화법에 폭력적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마저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 자기계발의 현실에 애써 적응하려고 몸부림치거나 작은 모니터 속에서 익명으로 힘겨운 비명을 지를 뿐이다. 타인과 약자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성을 지닌 채로. 브루노와 미셀이라는 ‘괴물’들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다룬 한국 젊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미세하게 분열된 여러 인물들로 나타난다.


 


 한편『소립자』는 인간의 ‘진화’에 대한 묵시록이자 인간의 내면에 대한 상징으로도 읽힌다.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을 다른 종으로 대체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다른 종으로 거듭 태어나는 최초의 동물이 될 것입니다”(338쪽)는 언급처럼, 인류는 점차 개인의 자유와 쾌락을 위해서 타인의 상처에 관심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분석되는 세계에서 인간이 지닌 죄책감과 수치심, 연민의 가치는 점차 희석된다. 미셀의 ‘괴물’적인 면모와 과학자가 되어 진행하는 연구는 바로 이 현실에 대한 강렬한 은유일 터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이미 미셀과 브루노가 존재하고 있다. 상처와 결핍을 타인의 사랑과 관심으로 보상받으려는 브루노, 모든 것을 냉정한 수치로 가늠하여 자신을 방어하려는 미셀은 당신의 내면에 이미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내면의 브루노와 미셀은 각자의 삶에 의해서 나름의 비율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사랑의 가치를 논하고 있다. 사랑은 과학과 예술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다. 그리고 두 형제의 이야기가 적힌 단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미셀이 연구한 새로운 인간 ‘종’에 대한 미셀 우엘벡의 마지막 서술을 읽어보자.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종은 고통 속에서 천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고결한 꿈이 있었다. 그 종은 모순덩어리였고 개인주의적이었으며 싸움을 좋아했고 이기심에는 끝이 없었으며 때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의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339쪽) 기괴하고 슬픈 두 형제를 통해서 세대론과 진화, 인간의 야누스적인 내면, 그리고 사랑의 가치를 역설한『소립자』의 마지막 문장은, 명료하면서도 아프다.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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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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