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 문학을 본격적으로,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고 안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순수한 독자로서의 시각으로 즐기지 못하고 조금이나마 동업자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과 나의 문학으로서 역량은 다이아몬드와 모래알 수준의 차이지만, 우선 글을 써보기 시작한 단계를 거쳤다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그런데 가끔 이런 예외가 있다. 작품을 보며 그때그때 느낀 점이나, 어딘가에 꼭 인용하고 싶은 문장을 메모해놓는 일조차 잊어버리고 그 자체에 빠져드는 경우다. 포스트 잇이 빼곡하게 자리잡는 좋은 책과는 달리, 그것과 별도로 어딘가의 세계와 연결해주는 환상의 출입문처럼 깨끗히 비워놓는 작품이 있다.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그랬고, 「타이니 스토리」의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읽을 때 그랬다. 문체가 어떻느니 개연성이 얼마만큼 차올랐느니 구성이 얼마나 치밀한지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이야기로서 즐길 자세만을 갖추게 됐다. 별다른 생각도 없이 푹 빠져 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한적은 없는데

「타이니 스토리」가장 뒤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읽으며 깨닫게 됐다. 난 그녀가 만든 세계에 빠져버리고만 것이다. 그토록 재밌고 달콤한 세계에.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 「세공 그림과 여행하는 남자」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세공 그림 속에 사는 여자를 사랑해서 자신도 거기에 뛰어들어 버린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독자 여러분께도 제가 만든 액자 속에 발을 집어넣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결코 싫증 나지 않을 단거리 경주입니다.

P. 332

국내 팬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일본의 여성 작가 두 명,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에 비하면 야마다 에이미라는 이름은 약간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마다 에이미는 그녀들과 같이 일본 3대 여류 작가로 불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에 필적하는 유일한 여성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또한 일본의 수많은 문학상 중, 신인에게 주는 순문학 상으로서 가장 권위있는 아쿠타가와상의 심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도발적이고 당당한 문체는 멋지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며 이야기의 상상력으로까지 이어진다. 「타이니 스토리」는 작가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그녀의 색깔이 가득담긴 21가지 단편을 실어놓았다.

나도 파파의 총에 맞아 죽고 싶다는 유서를 발견해 벌어지는 헤프닝부터 시작해서, 좀벌레나 전신주씨가 되어 그들의 시점으로 쓰여진 사랑 이야기,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로 칭송하며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소제목 하나를 따와 작품을 만든 오마주까지, 가지각색의 작품들이 야마다 에이미만의 순수한 맛을 지닌 채 수록돼 있다. 야마다 에이미 소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독자일지라도 21가지나 되는 이야기 앞에선 어떤 한 가지 세계와 접촉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긴 어렵다. 모두 제각각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른 작품들이지만 순수하고 원초적인 맛으로 자리잡고 있는 야마다 에이미의 향기에 취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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