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지니
- 작성일
- 2013.6.27
사악한 늑대
- 글쓴이
- 넬레 노이하우스 저
북로드
넬레 노이하우스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작품의 배경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타우누스라는 지역이라 타우누스(Taunus) 시리즈라고 불린다.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키르히호프 형사 콤비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이번 신작을 포함해서 현재까지 국내에는 총 6권, 전 시리즈가 모두 출간되었다. 전 시리즈를 다 읽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이번에 발매된 <사악한 늑대>가 아닌가 싶다.
타우누스-01 사랑받지 못한여자 (원제 : Eine unbeliebte Frau)
타우누스-02 너무 친한 친구들 (원제 : MORDSFREUNDE)
타우누스-03 깊은상처 (원제 : Tiefe Wunden) ★
타우누스-0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원제 : Schneewittchen muss sterben) ★
타우누스-05 바람을 뿌리는자 (원제 : Wer Wind Sat)
타우누스-06 사악한 늑대 (원제 : Boser Wolf) ★★



사랑받지 못한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상처



한 작가의 시리즈가 단기간에 여섯 권이나 발매될 정도이면, 꽤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국내에 첫 출간되었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른 독일 작가들의 작품까지 덩달아 출판되는 등 많은 이슈를 몰고 왔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 특징은 무엇보다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에 있다고 하겠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물에서 흔히 치중하는 단순히 범인 찾기, 혹은 반전이나 트릭에만 집중하지 않는 대신, 그녀의 작품은 꼼꼼한 복선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치밀하게 엮어서 한 편의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는 식이다.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 누군가의 행동들이 결국엔 모두 한 방향으로 흘러 마지막 결론에 이른다. 단순히 깜짝 쇼처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되어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딱 두 가지이다. 책을 두 번 읽거나, 아니면 처음 볼 때 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거나.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소설 읽는데 메모까지 해가면서 읽어야 되느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용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다. 다만, 인물 관계도를 체크하면서 읽어갈 경우 그 재미가 몇 배가 된다는 말이다. 작가가 하나씩 던져주는 퍼즐 조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혹은 보여지는 그림 말고 그 이면에 숨겨진 복선을 추측해보고 싶다면 그녀의 작품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여기서 무슨 놀이 할 거예요?"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할 거야. 옷도 갈아입을 거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나간 뒤 그녀는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뜀을 뛰었다. 그리고 아까 모두들 그녀의 드레스에 감탄하며 칭찬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늑대가 나타났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늑대 분장을 한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이런 비밀 놀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건 나중에 그 일을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이번 신작 <사악한 늑대>는 아동학대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북로드에서는 시리즈 내내 원서와 다르게, 독자적인 표지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독일판 표지보다 오히려 더 상징적이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번 작품의 표지는 빨간 망토를 쓰고 있는 늑대의 이미지인데, 극중에서 어린 소녀들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하는 어른들을 동화 속에 등장하는 '늑대'처럼 상징화해서 기억한다. 실제 샤를 페로의 동화에서의 빨간 모자 소녀도 결국,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늑대에게 잡아 먹히지 않나. 원래 이 동화의 교훈은 수상한 사람을 조심하라는 아이들의 교육적인 목적이라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일어나는 일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가족 혹은 그만큼 가까운 이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무섭고 끔직하다.
어느 여름날, 강에서 익사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처참한 시체에는 끔찍한 학대의 흔적이 남아 있고,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소녀의 신원을 수소문하지만, '인어 공주'사건은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유명 방송인 한나는 자신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사연을 왜곡해서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다른 것 때문에 항의와 질타를 받게 된다. 그로 인해 보복까지 가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오랜 심리상담사인 레오니로부터 한 사연을 듣게 된다. 그녀는 방송인 특유의 직감으로 대박 감이라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는 잔혹한 폭행을 당한 채 차 트렁크에서 발견된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한나의 사건을 맡아 단서를 쫓아가지만, 곧 심리 상담사 레오니까지 처참하게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고 만다.
세 건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피아의 동창인 엠마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전개되고, 방송인 한나의 가족, 그의 주변 인물들과 그녀가 추적하던 미스테리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엠마의 시댁인 자선단체 '태양의 아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가 얽혀서 이야기의 끝을 향해 폭주한다. 등장인물이 많고, 그들 각각의 스토리만 보아도 매우 흥미로울 만큼 이야기가 다양하다 보니, 마지막 모든 퍼즐이 맞춰줬을 때의 그 엄청난 재미는 상상을 초월한다. 초 중반까지만 해도 전혀 별개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던 부분들이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진다는 것은, 이 방대한 스토리, 구성이 작가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구축이 되어 있다는 얘기일 텐데... 새삼 놀라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린 아이들은 이게 나쁜 짓이구나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차려요. 하지만 믿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저항하지 않지요. 그런 경우 범인들은 아이를 공범으로 믿게 만들어요.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니까 엄마나 오빠, 동생에게 말하면 절대 안 돼. 내가 너만 예뻐한다는 걸 알면 그 사람들이 슬퍼할 수도 있고 질투할 수도 있거든.'이런 식으로 아이를 구슬리는 거죠."
타우누스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넬레 노이하우스라는 작가의 깊이도 점점 더해가는 것 같다. 사건과 범인, 그리고 해결되는 과정만 있어도 미스터리 스릴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스토리가 톱니 바귀처럼 맞물리면서 굴러갈 때의 그 짜릿한 즐거움과, 등장인물에게 이입되어 울컥하는 감동까지 주기란 쉽지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리즈로 전개될 때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바로 캐릭터에 있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이라는 캐릭터는 실제 살아있는 모델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리얼하다.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이라 불 완전해 보이고, 엄청난 직관력으로 사건을 해결할 때는 정말 완벽한 형사 같고.. 캐릭터도 독자와 함께 점차 성숙해져 간다는 느낌이랄까. 그들 주변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닥쳐온 비극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꼬이거나,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도망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실의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동학대는 작품 속의 이야기처럼 멀리 독일까지 가지 않더라도, 실제 우리 나라에서도 자주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다. 어린이 집에서 사람이 절대 먹지 못할 만한 음식을 먹인다던가, 피 멍이 날 정도로 아이들을 꼬집거나, 때린다거나 하는 뉴스들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이런 신체적인 학대 뿐만 아니라 폭언이나 소리 지르기, 위협하기 등의 정서적 학대도 실제 가정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정서적인 학대가 개인의 성격을 좌우할 뿐 아니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 손에서 멀어져서 어린이 집 등의 위탁 시설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정서적인 학대가 어른이 되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들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소수의 경우는 아동 성애자로 분류되는 이들인데, 이들에 의한 살인이나 폭행 등의 기사도 꽤나 보도가 되었었다. 하물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세상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줄거리는 일부러 리뷰에 기재하지 않았다. 타누우스 시리즈를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다면, 맨 처음 이 작품으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단숨에 나머지 시리즈들이 읽고 싶어질 정도로 푹 빠질 것이다. 더위와 장마 때문에 우울하거나 불쾌할 때도 이 작품이 도움이 될 것이다. 밤잠을 설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들 테니까 말이다. 흥미진진한 긴장감과 짜릿함은 기본, 마음을 건드리는 묵직한 한 방은 보너스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넬레 노이하우스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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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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