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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글쓴이
로버트 트리버스 저
살림출판사
평균
별점7.1 (11)
세균맨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가 지은 [왜 우리는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은 책이 자꾸 떠올랐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도착의 론도]에서 주인공인 야마모토는 작가지망생이다. 힘들게 쓴 추리소설 신인응모작을 친구에게 맞기고 분실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내면의 광기와 집착을 잘 그려냈다. 창작을 하는 야모마토의 고통스러운 심리, 분실된 작품이 다른 사람의 수상작이 된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야마모토 역시 전년도 수상작을 그대로 도용한 것이었는데, 수상작을 써야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읽었던 책을 자신이 창작해낸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기만을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우리 세계의 모든 영역에 뻗어있는 기만과 자기기만의 매커니즘을 종횡무진 탐색한다. 남을 의식적으로 속이기 위한 행위인 기만은 자기기만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남을 더 잘 속이기 위해 기만은 진화해왔고, 기만에 봉사하는 자기기만은 무의식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기만의 인지적 부담을 덜고 속였다는 비난에 방어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왜곡, 편향시키고 진실을 부정, 투사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합리화하는 등의 자기 방어기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말하자면 ‘이익’을 위해서다. 그러나 생태계에서의 자기기만이 속이고, 속이는 것을 간파하면서 지능이 발달하는 진화경쟁이 이뤄내는 순기능도 있지만, 일시적 혜택을 좇다가 큰 대가를 치룰 수도 있다. 지은이가 사례로 제시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항공우주 재난과 전쟁의 역사처럼 말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선심성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뒤, 공약을 파기하는 정치인과 그 세력의 자기기만행태는 끊임없이 뉴스거리로 오르내린다. 연일 새로운 궤변을 늘어놓고 합리화하며 자기편향을 보이는 전형적인 자기기만이다.  


  트리버스는 속는 자와 속이는 자 사이의 공진화 경쟁과 빈도 의존효과에 따라 적절히 균형이 유지되어 놀라움을 안겨주는 자연에서의 기만부터 신경생리학, 면역학, 심리학에서의 다양한 자기기만 이론을 설명하고 더욱 흥미진진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한다. 개인의 무감각과 과신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항공사고들, 조직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향해 기만행위를 하고 조직 내의 기만을 유도한 것으로 밝혀진 항공 우주 재난, 전쟁과 종교에서의 자기기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짓 역사 서사가 그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도 관련되어있는, 위안소 운영 부정에 관한 일본의 역사 고쳐쓰기 대목에 눈길이 갔다. 일본정부는 1993년에야 비로소 위안소 운영을 인정했지만 ‘배상’은 거부했고 최근 들어 위안부가 성 노예체제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대단히 정확히 서술하고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26일에 유엔에서‘여성과 인권’을 주제로 연설한다는 뉴스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일본각료들의 망언 퍼레이드, 이용녀 할머니의 죽음으로 57명으로 줄어든 생존 위안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을 막았다는 니콘 등의 뉴스에 분로를 금할 길 없다. 일본 뿐 아니라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부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기 위해 벌였던 원주민 학살, 학대, 질병 전파 등의 부끄러운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는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자임하는 미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이웃나라를 침략하고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독재자를 내세우고, 수많은 나라를 대리통치를 한다는 명분으로 국제적 개입과 전쟁에 집착하는 것은 이득을 챙기고 군산복합체를 성장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한 지은이는 9/11 사건이라는 가짜 구실을 내세워 석유와 경제적 자산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주둔 기지를 건설해 맹방인 이스라엘을 지원하기위해 벌인 이라크전쟁은 기만과 자기기만을 수반한 어마어마한 군사적 실책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한다.    


  책은 말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도덕성을 과대평가하고, 과신하고, 때로 통제 착각을 하고, 스릴을 즐기는 권력자의 공격적인 자기기만의 편향이 전쟁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지능은 속이는 자를 돕기 때문에, 기만과 자기기만은  종이 영리할수록 더 자주 일어나고 나이가 같은 아이들 중에서 영리한 아이일수록 거짓말을 더 자주한다고. 트리버트는 자신이 달라지길 원하지만 바꿀 수는 없는, 더 잘하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자기기만의 역설을 전하면서 아름답고 복잡하며 아주 흥미로운 자기기만이 한편으론 몹시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또 기만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비롯해 온갖 가능성을 인식하고, 기만과 자기기만을 의식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맞서 싸움으로써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다고도 전한다. 과학자가 쓴 500여 쪽의 거대한 저작이라고 생각하면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책장을 열면 예상은 빗나간다. 내 안에서, 도처에서 벌어지는 자기기만의 흥미진진한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지은이의 여성편력에 대한 경험담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객관적 사실이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글쓰기에 집착하는 여느 과학서 저술가들과 달리 자신의 사생활을 과시하듯 노출시키는 지은이는 특이하다. 이것도 자기기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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