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읽는 책

책으로여는길
- 작성일
- 2014.5.24
힘 있는 글쓰기
- 글쓴이
- 피터 엘보 저
토트출판사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책을 꽤나 뒤적거려봤다. 한때는 직업으로 글을 썼고, 지금은 개인적인 취미로만 글을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부딪치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열망에서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심심치 않고 보고 있다. 정갈하게 형식에 꽉 짜여져 있는 엄격한 글쓰기책이 있는 가하면 내면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자유로운 형식의 책들도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은 그야말로 글쓰기란 무엇인지, 글쓰기의 단계별 성장을 위한 형식을 갖춘 글쓰기 교본같은 책이었다. 내가 알지 못한 많은 부분에 대한 방법을 알 수 있었고,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를 깨닫게 해주었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서는 글을 쓸 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으르고 글을 잘 써야겠다는 절박함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혼자 그 과정을 단계별로 적용해나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책에서 제시한 대로 한 번 해보려고 시도를 해봤으나 이내 곧 내 스타일대로 내 방식대로 회귀하게 되었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살짝 피하게 된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의 이면에는 여기서 승부를 보고 싶다라는 간절함이 부족한 것 같았다. 최근에는 서평을 제일 많이 쓰다 보니 형식에서도 어느 정도 패턴이 생기면서 읽고 쓰는 것으로 만족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습관적으로 독서, 글쓰기에 손이 가게 된다. [힘 있는 글쓰기] 역시 습관적인 호기심에 펼쳐 든 책이었다. 이 책의 부제인 '당신의 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가장 실용적인 글쓰기 매뉴얼'은 수많은 글쓰기책에서 어필한 것과 대동소이해서 이 부분만 봐서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옥스퍼드 대학 33년 스테디셀러'라는 문구에서는 약간 호기심이 일었다. 33년 동안 꾸준히 읽혔던 책이라면 뭔가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아님 여전히 입으로 회자되는 거품인가? 한 권쯤 더 읽는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책을 처음 받아들고, 옮긴이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이 다른 글쓰기책과는 조금 다른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다른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독자들에게 피드백 받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제법 깊이 다룬다는 점이다. 이 둘은 글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그 무엇보다 도움이 되지만 그 어떤 책에서도 다루지 않는 부분이다. 더구나 글에 '힘'을 담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저자로서 선뜻 쓰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얘기를 하면 욕먹기가 십상이라는 정도는 글쓰기를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기가 발견한 바를 독자에게 '기꺼이 내어주려고'했다. 그 점에서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 p.9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도 저자의 오랜 시간 쌓인 글쓰기 내공에 감탄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도 어떠한 과정이라도 자신감있게 시원한 답을 제시한다. 애매한 것이 없다. 원인과 결과의 분명한 상관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해야 할 것을 주저함없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형식이 있긴 하지만 글쓰기처럼 주관이 뚜렷한 과정을 자판기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그렇게 뽑아낼 수 있는 원리를 명쾌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의심과는 달리 저자는 수많은 경험과 사례를 통해서 글쓰기라는 모호한 과정의 원리를 꿰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고, '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 지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수많은 글쓰기책에서 주장해 온 '개요짜기'를 이 책은 비틀어 버린다. 물론 개요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가 있다. 무조건 글을 쓰기 전에 개요부터 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개요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던 나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너무 반가웠다. 그는 순서에 개의치 말 것을 주장한다. 완벽하게 다듬어 가는 글은 틀리지 않을 수는 있어도 생각이 끊어짐으로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단은 쏟아내면서 의식의 흐름을 열어라. 그 뒤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 뒤집어 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몰입의 상태에서 쓴 글은 순서가 바뀔지언정 거의 살아남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저자는 재차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현재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패턴이기도 해서 더욱 반가웠다.
독자를 의식해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고통스런 이유, 그 공포를 뛰어넘기 위한 비법, 역자도 얘기한 것처럼 글이 '진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법'을 실현하기 위한 그 만의 방법을 읽으면서 글을 대하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하는 주먹구구식의 글쓰기가 바로 나에게는 큰 효험이 있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물론 아직 보강해야 하는 단계가 많긴 하지만 그것을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내가 이 책을 읽은 의미는 충분했다.
그는 문장이 이상하거나 내용이 이상해지더라도 멈추지 말고 쭉 쓰라고 권유한다. 글을 쓰다가도 'delete'키를 누르면 다시 문장을 교정해가는 습관이 있는 나는 조금 뜨끔했다. 그렇게 수정하는 동안 모처럼 드러나기 시작하는 내 안의 창의성은 그대로 다시 숨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꼬가 텄을 때 문장의 형식에 구애받지말고 끌어낼 수 있을 만큼 끌어내라는 거의 그의 조언이다. 그런 '날원고'는 퇴고와 피드백을 거쳐 생생한 글로 다시 정비될 수 있기에 의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문장을 완성해가다 보면 표면적으로는 잘 쓴 글이 될 지언정 그가 말하는 '진짜 목소리'는 결코 그 글 속에서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듣고보니 그렇다. 결국 쓰기도 퇴고도, 피드백도 두려워해서는 결코 '힘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결국 글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잘 토해내고, 잘 삭제하고, 그리고 잘 다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문장은 처음 날원고를 작성하는 최고의 순간에 탄생하기 쉽다. 그때 우리는 몸이 풀린 상태로 빠르게 쓰고, 들떠 있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른 것은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려는 바에 온전히 몰두 한다. 이렇게 흘러나오는 문장은 살아 있고 생생해서 독자도 그것을 귀로 들을 수 있다. 분명 날원고의 상당 부분은 이렇지 않을 테고, 퇴고하면-언어를 느리고 조심스럽고 의식적으로 다루면서-그런 언어에 도달하기란 더욱 어렵다. 퇴고는 복잡한 방정식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 문장을 쓰다가 멈추고 적절한 단어를 고민하고, 대안은 없는지 기억을 더듬고, 그 문장이 앞뒤와 잘 어울리는지 따져야 한다. 생산 단계에서 자기가 말하려는 바를 온전히 느끼는 데 전심전력으로 달려드는 것과 달리, 퇴고할 때는 독자를 감안하고 전제 구조를 생각하고 그 말이 진실한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훌륭한 날원고에서 문장을 탄생시키지만 퇴고에서는 문장을 구축해야 한다." --- p.245
물론 이러한 방법의 글쓰기만 제시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쓰는 글 뿐만 아니라 자료를 참고하면 쓰는 글에 대한 것 역시 통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자료를 참고해서 쓰는 글일 경우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할 것 같지만 실은 비슷비슷하고 때로는 상반된 자료 더미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맸던 경험이 많은 나는 그의 확신에 찬 해법에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나 편견, 또 즉석 원고를 써보는 기법을 활용하면 이런 마비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아는 게 적을 때 시작하는 편이 쓰기 쉽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 후 조사한 내용은 생각을 점검하고 원하는 만큼 세련된 수준으로 글을 다듬는 데 쓸 수 있다.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나 편견이나 즉석 원고를 써보는 기법을 쓰면-특히 이 중 두어 개를 같이 사용하면-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읽거나 조사할 때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낼 것이다. 이 기법들은 조사가 지루하거나 까다로울수록 더 도움이 된다. 따분한 조사도 흥미진진해진다. 당신이 이미 그 주제의 '권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다른 권위자-그 책이나 글의 필자-가 당신의 편견에 동의하거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재미를 느끼는 동시에 초롱초롱해질 것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새로운 데이터나 생각을 제시하면 흥미와 에너지가 솟아날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 두뇌에 그물망이 만들어져서 원래대로라면 따분했을 정보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 --- p.165
45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일관되게 그가 주장하고 있는 기본 원칙은 내 안의 잠재해 있는 에너지를 끌어내 펄떡이는 것과 같은 살아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 역시 그의 그러한 철학이 그대로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방대한 분량이 형식에 얽매이지도, 상투적이지도 않게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힘 있는 진짜 목소리' 덕분이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짜 좋은 글이 어떤 글인지를 평범하지 않은 그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으며 -물론 퇴고의 어마어마한 고통도 알게 되었지만- 그런 글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쓸 수 있게 되는 지를 배웠다. 막연한 주제를 이렇게 솔직하고 확실하게 알려주는 책이 또 있을까? 읽을수록 감탄을 하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중구난방 글을 써 온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 준 유일한 책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