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vesper
  1. 기본 카테고리

이미지

도서명 표기
마의 산 (상)
글쓴이
토마스 만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5 (12)
vesper

지금 당장 왜 <마의산>을 읽어야하냐고, 그 이유를 대보라면 딱히 할 말이 없을 거 같다.


천페이지가 넘는 장편의 관념소설을 재밌어라 읽어댈 이는 드물테니, 이 책과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스라는 평범한 이십대 청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설마 7년이나 걸리겠냐"는 작가의 농담은 시간의 유용성, 내지는 효율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한다.


 


그런만큼, 시간성의 문제는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


3주 예정으로 사촌 요아힘의 문병을 위해 베르크호프 요양원을 방문했던 한스는, 자신도 결핵 진단을 받고서 7년이란 시간을 그 마성의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지상의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에는 전혀 개의치않고서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들, 기억할 새도 없이 훌쩍 덩어리가 되어 지나가버리기도 하지만, 순간 속에 영원을 담듯이 한없이 미분화돼 정지된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그래서 음악이 중요하다. 시간을 타고 흐르는 예술, 음악은 "시간의 흐름에다 각성과 정신과 귀중함을 부여하니"까. "음악은 시간을 일깨우고, 우리들이 시간을 아주 섬세하게 향유하도록 일깨우니"까. 주인공 한스가 이 요양원에서 음악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러나 사촌 요아힘은 요양원에서의 무의미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는 지상의 의무 속으로 복귀하지만, 끝내는 나약한 육체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은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이러한 요아힘과는 달리 한스는 날짜를 세는 것이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영역을 탐구하고 순간 속에 비전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비전도 찰나 속에 사라져버릴 만큼 시간은 도도하게 인간을 배반하며 흐른다. 7년이 흐른 뒤 한스가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젊은 군인으로 전장에 참여하게 된 한스, 이것은 그 시대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참여" 방식이다. 청년의 죽음을 요구하는 지상의 시간 또한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전장에서의 한스는 전우의 시체를 짓밝으며 무거운 군화발로 질척질적 전진한다. 전진할 수밖에 없으므로,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흥얼거리며, "가지에 새겨놓은 사랑의 말들"을 기억하면서, 한스는 그렇게 죽음에 다가선다.


 


이 소설의 또하나 굵은 줄기는 한스를 교육하는 이들 사이의 논쟁이다.


시민적 계몽주의자를 자처하는 세템브리나, 종교적 사해동포주의자 나프타, 그리고 마담 쇼사와 그녀의 연인 페퍼코른의 대화적 논쟁은, 각 인물들이 대변하는 가치들의 생애 마지막 불꽃이다. 계몽주의가 보여주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무한 낙관주의, 그 빈틈을 치고 들어오는 나프타의 역설적 언변들, 이를 테면 선과 악을 뒤집거나, 병든 육체의 윤리성을 찬양하거나, 폭력의 미학을 정당화하는 논변들, 그리고 관능과 육화된 욕구에 충실한 페퍼코른의 압도성, 이 모든 논변들은 한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한스는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한스를 위한 교육 소설이니, 성장 소설이니 하기도 어렵다. 한스의 각성은 혼미한 정신 속의 직관적 비전, 딱 그 순간 뿐이기에 그렇다. 이들은 모두 죽는다. 병으로, 자기 육체에 대한 폭력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암울한 시대적 열병 속에서도, 무감각과 폭력이 지배하는 이 지상에서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곧 잊혀져버린 한스의 비전, 그 예감이다. 사랑의 꿈이 생겨나는 순간들, 포탄의 불꽃이 춤을 추는 죽음의 축제에서도 슈베르트의 음악처럼 피어올릴 수 있는 예감, 사랑,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이걸 알기 위해서 이 긴 소설을 읽어야만 했을까?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다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어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그래, 이 장편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에.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vesper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14.7.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4.7.15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14.7.4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4.7.4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13.4.10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3.4.10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1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0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8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