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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sper
- 작성일
- 2014.7.15
목로주점 (상)
- 글쓴이
- 에밀 졸라 저
열린책들
이 장편소설은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다.
파리의 시궁창 하층민을 구성하는 그녀의 직업은 세탁부다.
그러니 그 성공이란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다.
독립된 자기 가게를 갖는 것, 빚없이 이윤을 남기며
잘 먹고 편안한 잠자리를 갖는 것, 그것이다.
그녀 말대로 바라는 게 있다면, 열심히 일한 뒤 자기 침대에서 죽는 거다.
제르베즈는 자신의 이상은 "그저 조용히 일하고, 언제나 먹을 빵이 있고, 잠자기에 적당한 집이 있고, 글쎄,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의자 둘, 더 이상은 아녜요…. 아! 그리고 아이들도 키워야죠, 가능하면 훌륭한 사람으로….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건 언젠가 살림을 다시 차린다 해도 더 이상 얻어맞지 않는 거죠. 안 돼요, 얻어맞는 건 정말 못 참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다.
쿠포와의 결혼생활은 서로에 대한 잔인한 비방과 육탄전으로 막을 내리고,
제르베즈가 차린 세탁가게는 나태와 식도락에 빠진 탓으로 하루가 다르게 쇠망하고
모든 것을 잃은 제르베즈는 자신의 침대가 아닌 골방 짚더미 위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썩은 육신의 악취를 풍기며 죽는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튼튼했던 그녀가 이렇게 몰락하는 이유는 순전히 기절적인 데 있다.
맛난 음식과 게으름이 주는 육체적 안락, 그리고 알코올에 중독된 탓이다.
그녀는 알면서도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락을 자초한다.
그녀의 남편 쿠포도 그랬지만, 그녀에겐 상황을 타개할 의지도, 지략도 없다.
그냥 하릴없이 망가지면서 몰락 그 자체에도 중독된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마지막 구원처가 될 수 있었던 구제와의 사랑도 너무나 쉽게 놓아 버린다.
이겨낼 수 있었다면, 중독이라 부르기도 어렵겠지만,
과연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생을 긍정하고 자신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도시 하층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인가.
구트도르 거리를 둘러싼 하층계급민의 삶이 생생하고 생동감있게 그려진 것은
이 소설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추상화되지 않은 그들만의 언어가 날것으로 살아있다.
또한 노동과 노동자들이 시대의 건전한 표상으로 이상화되지도 않는 것도 큰 장점이다.
자기 몸으로 하루를 벌어먹고사는 이들의 삶은 추접스럽고 외설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작가가 통제하는 한 일가의 몰락하는 삶은 잔인한 데가 있다.
몰락을 감내하는 인간의 모습이 극히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서 인간은 갖가지 중독의 노예가 되어 헤어나질 못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산다는 건 이처럼 어려운 것인가.
자기 침대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간직한 채 죽기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가 극단적 이기심 밖에 없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동정심이 강한 인물들은 예외없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중독에 대한 내성은 강력한 이기적 생존 본능 밖에는 없다는 것인가.
하지만 졸라의 세계에서는 이기적 생존 본능 또한 돈에의 중독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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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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