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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순이
- 작성일
- 2014.8.20
사악한 늑대
- 글쓴이
- 넬레 노이하우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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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악함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듯한 범죄들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범죄라 불리는 행위들이 다 악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범죄가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성적인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요즘 들리는 소식 중에는 친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소식도 들어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같은 탄식도 별 소용이 없는 듯,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착취는 이제 지하에서 버젓이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세상의 추악한 현실을 넬레 노이하우스의 '사악한 늑대'는 다루고 있다.

한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농락을 당했다. 아이는 아버지가 재미있는 장난이라 말하며 멋진 선물을 주어도 그것이 옳지 않은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이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편은 기억을 지우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기억은 군데군데 지워져 있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후에 아이는 가출해 가족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아이의 특이한 증상을 해리성 장애라 불렀다. 아이는 십대 후반에 이미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적잖이 세월이 흐른 어느날, 처참하게 찢긴 소녀의 시체가 강에 떠오른다. 너무 마른 아이의몸은 아이가 살아있을 때 잔혹한 학대를 받은 흔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십여년 전 일어났던 미제사건과 매우 흡사하다. 형사들을 풀고 방송의 협조를 받아도 조그마한 단서조차 찾을 수 없자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유명 앵커인 한나 헤르츠만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자동차 안에서 발견된다. 평소 원성이 자자했던 한나였지만 그녀가 당한 성폭행은 경악할만큼 지독했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를 담당했던 심리상담사가 시체로 발견된다.
소녀의 시체가 떠오르던 날 피아는 여고 동창들의 모임에 참석했었다. 그곳에서 피아는 엠마라는 친구를 만났다. 엠마는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현재 여섯 살 된 딸 을 두고 있고, 좀 있으면 아이를 또 출산할 예정이다. 엠마는 자신의 시아버지가 '태양의 아이들'이라는 미혼모와 고아 시설의 대표라 이야기하며 자랑스러워 한다. 그날 짧은 만남을 갖고 헤어졌는데 엠마에게 연락이 왔다. 딸 아이에게서 성추행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피아에게 도움을 청한다. 엠마는 남편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고, 피아는 남자친구의 손녀를 잠시 돌보고 있는 상황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편 한나와 모종의 만남을 가졌던 그룹이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들 중에는 어린이 성추행으로 변호사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전직 범죄 조직의 일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범인은 오리무중이고, 각 사건들은 분리된 채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작은 편린들을 붙잡고 나아갈 뿐이다. 죽은 소녀의 시신과 엠마네 집에서 일어난 가족간의 성추행의 흔적, 그리고 한나가 만났던 그룹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건과 사건 사이엔 보이지 않는 끈이 있고, 수면 밑에는 상상도 못할 거대 범죄 조직이 자리를 하고 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신사의 탈을 쓴 후 벌이는 온갖 잔인하고 더러운 악행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자식에게까지 손을 뻐친 그들의 비도덕적이고도 악랄한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들은 가족간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렸고, 회복할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삶의 최절정에 오르던 날, 천륜을 저버린 죄에 대한 응징을 받는다. 그들의 끔찍한 결말은 늑대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날 이미 예정됐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감금과 폭행에 살인까지, 거기다 아이들을 이용해 돈벌이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지옥의 사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시급한 문제인데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며 손 놓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넬레 노이하우스가 보내는 경고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녀가 아무리 애써도 아동 대상의 포르노 산업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끊어내기도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포르노 산업이 요즘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산업의 하나란다. 그러나 효과가 미비하고 금새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할 때, 우리는 한 아이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지는 것이며, 망가져버린 인생만이 아닌 실제 겪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에서 아이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을 소설을 통해 설득력있게 전개하는 넬리 노이하우스를 보며 책 한 권의 힘이 어떤지를 나는 지금 체감하고 있다.
*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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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