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위한 빈자리

긍정넉넉
- 작성일
- 2015.4.19
최초의 인간
- 글쓴이
- 알베르 까뮈 저
열린책들
책을 선택할 때나 읽을 때 ‘제목’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제목’과 ‘지은이’로 읽을 책을 선택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제목의 의미를 찾게 되니까요. 대체로 제목이 책 내용이나 의미를 함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2009.12.20. 열린책들)》은 제목만으로는 책 내용이나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최초의 인간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요?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소설 《최초의 인간》은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프랑스에 있는 아버지 앙리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크는 묘소에서 만난 아버지의 나이가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29살이라는 사실에 연민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크의 나이 겨우 한 살 때 헤어졌고 마흔이 되도록 인지하지 않고 살아온 시간 탓에 아버지를 향한 연민의 감정은 무척 낯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크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조차 흐릿해져버린, 가난한 사내인 아버지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기로 합니다.
《최초의 인간》은 과거와 현재 사이를 비규칙적으로 오가며 자크의 기억 속 책장을 넘나듭니다. 자크는 자식교육에서만큼은 고집스러운 자신만의 철칙을 갖고 있는 외할머니와 어린 시절 앓았던 병 탓에 귀가 먹고 말도 잘 못하게 된 엄마와 함께 성장합니다. 일요일에 외삼촌이 직장동료들과 함께 가는 사냥에 동행하면서 사내들끼리 어울리는 시간을 경험합니다. 자크는 외할머니의 결정대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견습공으로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등교육 수료반 담임선생님인 베르나르 씨의 설득으로 가난한 집 손자이자 아들인 자크가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자크는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도움을 준 선생님과의 이별에서 고통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 곧 마주친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이 외톨이 혹은 이방인이 된 듯 느끼지만 학교에서 놀이와 공부하며 지내는 생활과 어머니 곁에서 지내는 가난한 동네에서의 가난한 삶과 구분지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소설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알베르 카뮈’의 삶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자크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이듬해인 1914년 마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어 전사합니다. 카뮈의 아버지 역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사망합니다. 자크와 카뮈 모두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빈곤한 가정에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자크와 베르나르 선생님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듯, 카뮈 역시 제르맹 선생님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카뮈가 사망하던 날 그가 지니고 있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이 소설은 혹시 카뮈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소설의 제목에서 지칭하는 인물은 자크의 아버지 혹은 카뮈의 아버지라고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최초의 인간》이란 자크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존재뿐 아니라 자크 혹은 카뮈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며(p.32) 어머니에게서 조차 아버지를 상상해 볼 만한 기억도 찾지 못한 채 완벽하게 아버지의 부재 상태에서 성장한 자크는 아버지 묘소 앞에서 실제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억지로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p.31) 이라고 말하지만, 자크의 속마음은 그와 반대로 줄곧 보호받고 사랑받기를 원했으니까요.
아이란 그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가 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는 부모에 의하여 규정된다. 즉,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규정되는 것이다. 바로 그 부모를 통해서 아이는 진짜로 자신이 판정된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이 판정된다는 것을 느낀다. p.212
어쩌면 알베르 카뮈는 양육자의 지지와 사랑이 충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성장기 내내 아버지의 부재를 더 크게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자크처럼요. 카뮈는 자크에게 자신을 투영시켜서 어린 시절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을 치유하려했던 건 아닐까요.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건 읽는 이의 몫이지만 이번처럼 모호한 경우는 처음이라서 답답하고 갑갑합니다.
부록으로 수록된 ‘구상 노트’ 등을 보면서 카뮈가 ‘이 작품을 완성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무런 소용없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카뮈가 심혈을 기울여 여러 차례 다듬은 뒤 출간되었다면 지금처럼 짐작만 하고 있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앞으로 알베르 카뮈를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에 뭉클해질 것만 같습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