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안또니우스
- 작성일
- 2015.12.28
시골에서 로큰롤
- 글쓴이
- 오쿠다 히데오 저
은행나무
십중팔구 내 인생 방침은 중학교 1학년 여름에 정해졌을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체제와는 반대편에 서고 싶다, 소수파로 있고 싶다, 모두가 오른쪽을 보고 있을 때 나만은 왼쪽을 보고 싶다. 청개구리라고 한다면 "네, 맞습니다"하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지만, 나는 아저씨가 된 지금도 베스트셀러 책은 읽지 않고, 브랜드 물건따위 사지 않고, 권위를 믿지 않는다. 문학상을 타면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거 하나도 안 고맙거든'하는 어린애 같은 오기가 있다. 그럼 받지 말라고? 아니, 상금은 탐나니까.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그 시기의 감동 체험이 바탕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책은 눈곱만큼도 안 읽었으니 말이다. (57~58쪽)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챘겠지만 오쿠다 소년은 '락 스피릿'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중학교 1학년 이후 지니게 된 것일 테다. 그런 지향을 실천에 옮겨 오늘의 그가 있게 된 것이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모티베이션이 그에게 벼락 같이 다가온 락 뮤직이었다.
중 1 때부터 고 3 때까지 6년간 오쿠다 소년의 락 홀릭 상태였다. 이 책은 그 시절에 대한 아릿한 회상이자 그의 삶을 결정지은 락에 바치는 심심한 헌사이다. 라디오 구입에서 비롯된 그의 소년기, 아니 청춘으로의 성장기는 온통 락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소설가로서의 자질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던 탓인지 새로운 문물인 팝 음악과 조우하는 순간 그에게 닥친 충격의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아우라에 휩싸여 브레이크 없이 덕후의 길을 내리밟은 그의 행태는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와 견주어볼 때 궤도를 한참이나 이탈한 외계인의 모습이었다. 라디오에서 T.Rex의 [Metal guru]를 들었을 때 감전된 듯한 충격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오쿠다 소년에게서 남다른 감수성의 결을 느낄 수 있다. TV를 통해 사운드는 물론 락의 비주얼까지 접하게 되었을 때 오쿠다 소년은 또 한 번 전율한다.
백 밴드의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프레슬리가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멋지게 등장했다. 오쿠다 소년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화면 속에 들어갈 듯한 기세로 쳐다봤다. (88쪽)
그후 음악 잡지를 구독하며 매니아 로드에 온전히 진입한 오쿠다 소년에게 또 하나의 깜짝놀랄 신천지가 열리게 된다. 아버지가 오디오 세트를 구입해 준 것이다. 그로부터 오쿠다의 삶은 학교 공부는 물론 용돈 사용 같은 경제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앨범 구입과 음반 재생 및 음악 감상이라는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특유의 감각에 음악만 생각하며 길러나간 안목까지 곁들여져 오쿠다 소년은 동년배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고 1 때 이미 걸작 판별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ABB)의 [At Fillmore East]를 듣고선 '이건 대단한 물건이구나' 하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서 어떤 큰 세계가 작품 저편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직감하며 마약에 취하듯 음악의 쾌감을 향유한다. 반면 다들 칭찬 일색이지만 오쿠다 소년이 보기에 마뜩찮은 음악과 뮤지션들도 있었다. 당시 모든 락 팬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우던 The Band 음악의 가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평가절하한다든지 라이 쿠더를 정체불명의 고등유민으로 폄하하는 등 그의 예리한 감식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 책의 압권은 자신의 소설 작품을 음악에 비긴 대목이라 하겠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교 공부는 등한시하고 음악에만 몰입하다가 결국 엘리트 코스에서 비껴난 자신만의 길을 택하게 된 오쿠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정체성에 대해 회의가 들 때마다 락 뮤지션의 지향에서 영감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
내가 과연 어떤 포지션을 원하는지였다.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 따위 바라지 않는다. 그런 것은 나와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또 귀찮을 것 같다. 그럼 일부 열광적인 팬을 거느린 컬트 작가가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느 정도는 팔리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러다가 자신을 뮤지션에 견주어 상상해보니, 스틸리 댄이 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80쪽)
그래서 그는 고백한다. 락이 그를 구원하였고 그를 이끌었으며 오늘의 그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이다.
록이 없었다면 내 십대 시절이 과연 어땠을지. 록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청춘을 구해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282쪽)
하여 락이 오쿠다 소년의 삶의 방향을 오롯이 결정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삶의 무게에 치어 헤맬 때 락의 정신이 판별의 잣대로 작용하여 모든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락 뮤직에게, 아니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락 아티스트들에게 결곡한 헌사를 바치고 있는 것일 테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