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
  1. 재미있는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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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비숍 살인 사건
글쓴이
S.S. 밴 다인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9.5 (4)
김준희



 


 


 반 다인 <비숍살인사건>


 


미국의 작가 반 다인(1888 ~ 1939)이 탐정 파일로 반스를 만들어낸 계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미술평론, 문예평론 등의 일을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약 2년간 입원하게 된다.


 


그렇게 병원에 있는 동안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추리소설을 읽다가 자신도 추리작가로 변하게 되었다. ‘나도 한번 써보자’라고 작정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라면 더 잘쓸 수 있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동안 그가 읽은 추리소설은 약 2000권에 달했다고 한다.


 


2년 동안 2000권의 소설을 읽는 것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일단 제쳐두고, 그는 많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캐릭터와 추리방법을 구상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은 ‘심리분석추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돋보기를 들고 바닥을 기어다니며 물적증거를 찾는 것보다는, 범행현장의 모습을 보고 범인의 심리와 성격을 파악해서 용의자를 추적하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profiling)을 중시하는 수사방법이다. 그런 주인공으로 파일로 반스라는 인물을 창조해냈다.


 


파일로 반스는 1926년에 발표된 <벤슨 살인사건>에서 데뷔한다. 그는 180 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단단한 근육질의 체형을 가지고 있는 독신 노총각이다. 친척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서 평소에 미술품을 수집하고 감상하며 소일한다. 펜싱과 포커의 명수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참 부러운 인생이기도 하다.


 


반스는 우연한 기회에 지방검사인 친구의 요청으로 살인사건 수사에 참가하게 되고 독특한 추리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한다. 반스가 활약하는 작품은 12편으로 이어지지만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연속살인사건을 다루는 4번째 작품 <비숍살인사건>이다.


 


동요의 노랫말대로 벌어지는 연속살인


 


살인범이 연속살인을 감행하면서 피해자를 택하고 살인방법을 정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규칙 또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소설 또는 노랫말 같은 기존의 텍스트를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에서는 희생자들이 '열 명의 작은 인디언'이라는 동요의 노랫말대로 한 명씩 살해당한다. 영화 <세븐>에서 살인범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가지 죄악에 걸맞는 사람들을 골라서 하나씩 살해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성서의 묵시록에 언급된 내용대로 수도사들이 연속으로 살해당한다.


 


살인범은 왜 특정한 텍스트에 따라서 연속으로 사람을 죽일까. 살인범이 그 텍스트에 집착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주변에 그 텍스트에 적당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상심리를 가진 살인범은 연속살인을 연극의 무대처럼 꾸미고 있다. 그 안에서 희생자는 연극의 도구로 전락한다.


 


누가 코크 로빈을 죽였지?


"나예요"하고 참새가 말했다.


"내 활과 화살로 코크 로빈을 죽였어요"


 


<비숍살인사건>에서는 위의 가사로 시작되는 '마더 구스의 노래'에 따라서 연속살인이 발생한다. 동요의 노랫말도 심상치 않지만 그 방법대로 사람을 죽인다면 이건 무척 잔인한 살인이 된다. 비뚤어진 세계에서 피로 물든 동화가 구현되는 것이다.


 


'코크 로빈'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성이 화살에 가슴이 뚫려서 숨지고, 얼마후에는 '마더 구스의 노래'에 걸맞게 머리 한 복판에 총을 맞고 살해당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누가 보더라도 동일한 살인범이 노랫말을 따라서 연속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파일로 반스는 이전에도 연속살인을 수사해 본적이 있지만 이런 식의 연속살인은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다. 살인이 연달아 터지면서 반스는 "이것은 완전범죄에 가깝네"라는 말을 한다. 단서가 될 만한 실마리도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수사진을 이끌고 간다는 이야기다. 범인은 무엇 때문에 동요에 따른 연속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파일로 반스의 심리분석추리


 


작가 반 다인은 평소에 '6'이라는 숫자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6편 이상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반 다인은 그 두 배에 이르는 12편의 장편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후반기의 여섯 작품은 전반기 여섯 작품에 비해서 작품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비평을 받는다. 반 다인은 스스로 그의 말을 입증한 셈이다. 그의 작품 제목은 < xxxxxx 살인사건>이라는 식의 제목을 갖는다.


 


여기서 'xxxxxx'는 한편만 제외하고 모두 여섯 글자다. <벤슨살인사건 (Benson Murder Case)>, '카나리아살인사건 (Canary Murder Case)', 비숍살인사건 (Bishop Murder Case)' 모두 마찬가지다.


 


파일로 반스는 자신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매번 엄청난 현학적인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런면을 지루하게 생각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파일로 반스는 그의 지식들을 교묘하게 사건의 해결에 연관시킨다.


 


반스는 '모든 살인은 동기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야', '현장에서 발견되는 모든 물적증거는 완전히 무시해버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심리를 중시하는 탐정이다. 또한 그는 '그림을 보면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듯이 범죄현장을 보면 누가 범행을 행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사건의 모든 정황, 범죄현장에서 보여지는 범인의 성향과 심리를 추적해서 범인을 지목하고 검거한다. 그는 <벤슨살인사건>에서 피해자가 왜 가발을 쓰고 있지 않았는지 궁금해하고, <케닐살인사건>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울만한 성향이 아닌 인물에 대해서 고민한다.


 


<비숍살인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반스의 주변에는 용의자로 꼽힐만한 사람들이 많지만, 반스는 그들의 알리바이나 동기보다는 그들의 성향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생활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어야 정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시킬 수 있는 인물인가. 용의자들을 바라보는 반스의 관심은 여기에 맞추어진다. 억압된 정서를 조금씩 배출하지 못한다면 노랫말에 따른 연속살인과 같은 잔혹한 연극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파일로 반스의 말처럼, 대부분의 연속살인은 범인만의 기괴한 환상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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