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하늘과책
- 작성일
- 2016.3.5
캐롤
- 글쓴이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
그책
<캐롤>이라는 영화가 좋은 평을 얻으면서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영화의 제목만 흘려 보았지 '동성애'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그 전부였다. '동성애' 말고는 아는 것이 하나 없기에 원작을 만나는데 있어서 아무런 편견도 예상도 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있는 경우, 영화를 보고 나면 아무래도 책 속에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동성애는 성에 보수적인 아시아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개방적인 미국에서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쓰였을 때는 더한 독자들의 거부감과 더한 논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디자이너를 꿈꾸지만 감옥 같은 프랜켄버그 백화점 인형코너에서 일하고 있는 테레즈. 표정 없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테레즈가 떠올릴 수 있는 한 싫어하는 것들이 죄다 응집된 백화점이 테레즈에게는 무겁게 느껴진다. 무대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와 가족조차 없는 자신의 현실에 외로움이 더해간다. 그런 테레즈 옆을 지키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며 화가를 꿈꾸는 리처드였다.
테레즈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리처드의 마음과 다르게 테레즈는 리처드와의 미래를 꿈꾸고 있지 않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바쁜 백화점. 그리고 테레즈 앞에 그녀가 나타난다. H.F. 에어드부인을 보는 순간 테레즈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냥 그녀를 보는 순간 행복감에 휩싸였다. 테레즈는 고객인 에어드부인에게 감사의 엽서를 보내고 자신에게 엽서를 보낸 직원을 찾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테레즈가 캐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사랑에 가까웠다.
다만 캐롤이 여자일 뿐이다.
광기까지는 아니라도 축복은 분명했다.
바보 같이 들리겠지만, 어떻게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p.79
캐롤을 만난 후 테레즈는 리처드를 만나도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리처드와의 약속은 깨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리처드에게 비밀이 생겨난다. 그런 마음도 모르고 리처드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테레즈는 캐롤을 만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캐롤에 대한 마음은 점점 커지고 테레즈는 그녀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캐롤에 대한 사랑으로 리처드와의 여행 일정을 깨버리는 테레즈. '테레즈는 단 한 순간도 마음속에서 캐롤을 지운 적이 없었다. (-p.111)' 테레즈는 리처드에게 묻는다. 남자랑 사랑한 적이 있냐고.
"그런 얘기는 들어봤지?"테레즈가 물었다.
"무슨 얘기? 남자 좋아하는 남자 얘기? 당연하지."
...(생략)
그가 귀를 열고 있음을 알고 테레즈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니, 남자 좋아하는 남자 얘기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갑자기 사랑에 빠진 거지,
이를테면 남자 남자, 여자 여자끼리." -p.150
위의 리처드와 테레즈의 대화에서 동성애에 대해 생각하는 차이점을 볼 수 있다. 리처드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테레즈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는데 남자 남자, 여자 여자끼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건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테레즈는 말한다.
자신이 캐롤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을 정의하는 내용과 다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테레즈는 계획되었던 리처드와의 여행이 아닌 캐롤의 여행에 동행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은 이미 사랑으로 가득 찼지만, 캐롤의 마음은 모르는 상태였다. 둘이 떠난 여행, 그리고 마음을 확인해가는 두 사람.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캐롤이 남편 하지와 이혼소송 중이었는데 하지가 캐롤이 딸 린디를 빼앗으려 수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캐롤의 가장 친한 친구 애비에게도 누구에게도 캐롤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 테레즈의 마음은 확고해지지만 캐롤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딸 린디 앞에 테레즈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며 분노와 배신감, 절망감에 휩싸이는 테레즈. 자신은 캐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만 캐롤이 자신의 극히 일부분만을 테레즈에게 헌신했다는 점에 캐롤과 함께 했던 날들이 사기극으로 느껴졌다.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약점으로 이용한다. 캐롤과 이혼소송 중인 남편 하지도,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말하다 캐롤과는 경쟁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리처드도. 세상 사람들에게 둘의 사랑을 말하고 말겠다고 협박한다.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건 혐오스러운 일이야." -p.310
이 세상은 온통 두 사람의 적이 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테레즈와 캐롤이 같이 있는 모습은 더는 사랑으로도,
행복한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주먹을 쥔 사람들 사이에 갇힌 괴물로 비춰질 뿐이다. -p.365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추악한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것이 남자 남자, 여자 여자인 것뿐인데도 말이다. 저자가 이 소설을 쓰면서 동성애를 다뤘지만 행복한 결말을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 남들에게 비난받고 작품 속에서도 비극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희망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희망의 결말이 동성애에 더 보수적이었을 시대에 쓰였다는 점이다. 251페이지에 보면 고전에 대해 '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다루는 거죠'라는 말이 나온다. 동성에 대한 것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책과 영화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를 보고는 실망한 적이 많은데 영화에 대한 평이 좋아서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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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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