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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글쓴이
정희진 저
교양인
평균
별점8.9 (30)
아그네스

  두 번째 읽은 책이다. 1년 반 전에 읽을 때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걷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느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 읽고 대만족이다. 최근 이 책만큼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은 없다. 독서법의 고전인  <독서의 기술>의 저자 모티머 J. 애들러가 말하는 '독자의 마음을 넓고 풍부하게 해주는' 책이다. 만일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기쁨과 만족을 누릴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만 읽는다면 독자로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한 애들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한다. 독서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나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

 

  이번 재독서로 발견한 생각할 거리를 몇 가지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인식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 한발 다가갔다는 점이다.

"지식은 인식자의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재현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태도,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투사)다. 모든 발화는 객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칼 융은 사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그림자를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인류가 자신의 무의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연재해보다 훨씬 끔직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의식은 인간의 90%를 좌우하는 세계고 나머지 10%만이 의식의 세계다. 그런 만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대로 알기 어렵다.    

 

  두 번째, 당파성에 대한 부분이다.

'당파성'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마르크스주의 용어라고 나온다. '계급 사회에서는 이론이나 예술이 불편부당이 아니며 계급적 이해의 제약을 받음을 말함'이라고 돼 있다. 저자는 "도그마, 관점, 당파성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보충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지성의 반대는 절충, 균형, 원칙, ... 이런 사고들이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다."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기존의 내 사고에 비춰보면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한다. 아직 전적으로 동의하진 못했지만 첫 번째 주장이 맞다면 이 두 번째 주장도 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도 자신의 입장에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해온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볼 문제임에 틀림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세 번째는 여성주의, 여성학,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먼저 여성학이 간(間)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저자는 여성학 책을 통해 획득한 위치성(positionality)을 확보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위치성은 구조(역사, 사회, 상황, ...) 속에서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방법'이라고 한다. 또 '여성학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관점, 세계관, 방법론'이라고도 한다. '여성학은 여성과 모든 타자를 종속 범주로 만들려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연구'라고 하는 정의도 들어있다.

 

  여성학의 관점은 내 현실 속에서 적용하며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 역시 일방적으로 주류(백인, 남성, 중산층, 정상인, 이성애자, 건강한 사람 등)의 시각에 포섭돼 살아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주류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내 위치성을 가지고 살고 싶다.

 

 넷째, 약자 혐오의 근원적 이유를 알게 됐다.

저자는 " 약자 혐오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인류(서구) 역사를 유지시켜온 기반이다"라고 한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이유다.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선함과 강함, 힘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선과 정의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경쟁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종종 학대와 폭력의 대상이 되고 희생된다. 이들뿐 아니라 장기 농성 단식에 들어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일베가 보여준 혐오스런 행동도 있다. 우리사회에서 피해자는 약자다. 약자를 지키고 보살피지 못하는 나라는 아무리 최첨단 시설과 과학 기술로 무장하고 있을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야만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약자 혐오의 근원적 이유, 그것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임을 알았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쟁점들을 정리해보았다. 이외에도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지만 지금은 미처 다 소화시킬 여력이 안 됨을 인정한다. 내년쯤 다시 삼독을 하겠다. 저자가 소개한 훌륭한 책들 가운데 우선 내게 있으면서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게으름을 부린 책부터 읽어봐야겠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 등.

 

  첫 번째 읽었을 때 느꼈던 저자의 불편한 문체가 많이 익숙해졌다. 명사형과 문장부호가 많고 무엇보다도 사고의 전환을 요하는 역설적인 언설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여성주의자는 기존의 언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의심의 꼬리표가 붙은 말들이 어떻게 편하게 읽히길 바랄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책이 좀 더 편하게 대중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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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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