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서평

꿀벌
- 작성일
- 2016.7.21
모멘트
- 글쓴이
- 더글라스 케네디 저
밝은세상
일생에 단 한번뿐인 운명적 사랑이야기라고 설명되어진 더글라스 캐네디의 책이지만, 사랑스러운 느낌과 상반된 어둡고 칙칙한 책 표지에 묘하게 끌렸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있는 사랑이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할테지만 이 책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술방식만큼이나 복잡하고 소중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불친절한 작가는 도망을 일삼는 남자, 토마스 네스비트,의 이혼서류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의 아내는 어떻게 만났고, 어쩌다가 이혼을 하게된건지, 남자는 어떤 추억으로부터 도망을 가는건지,
왜 자꾸 도피를 일삼는지에 대한 설명은 흙탕물 속에 헝크러진 잔재가 가라앉든
아주 서서히 알려준다. 그리고 아래의 말을 마치 주문처럼 이야기의 서막을 알린다.
Wie bald 'nicht jetzt' 'nie' wird
'지금은 아니'가
'전혀'가 되기란 얼마나 순식간인가.
독립된 '순간'이란 뜻을 가진 제목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은 채 뒤죽박죽으로 현재의 조각들을 뿌려준다.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과거의 조각을 찾아내는 것은 온전히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수수께끼같은
도입부는 다소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놓지않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덮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마치 내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후회할법한 실수가 있고 그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늘 현재에 집중하기위해 발버둥치는 동시에 '과거에 이러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히기 마련이다. 이젠 형상도 사라져버린 깨진 유리병이지만 마치 유리 한 조각이 마음 깊숙이 박혀있는것처럼.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관계는 얼마나 애뜻하며 조심스러운가. 다음 글귀는 여행작가인
토마스와 어떤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는 방송국 번역가 페트라 두스만 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아찔한 순간과 더불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까하는 조바심이 묻어나 있다.
"우리는 바라는 걸 얻으리라는 기대로 이튿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바라는 걸 얻게 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우리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기다림이란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에 기초할 뿐이다. 하지만 그 바람을 서둘러
드러내면 이루어 지지 않을 수도 있다. 관심을 보이되 속이 들여다보이면 안된다. 그것이 기다림이다" (p.165).
서독과 동독의 분단관계를 배경설정으로 한 점과 베를린 장벽의 상징성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점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마치 정말로 일어났을법한 치밀한 묘사에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까워지려는 욕심에 한걸음 다가가려 하다가도, 혹시 상대에게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리는 두사람" (p.187) 이라고 표현된것처럼 서로를 조심히 염탐하고 수 많은 감시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굳건할 줄 알았던 믿음이 의심과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산산조각 나는 것 역시 작가가 만들어낸 배경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곳은 비밀경찰단들의 감시가
끊이질 않는 바로 분단시절이니까.
나라에 아이를 빼앗기고 서독으로 망명해온 동베를린 출신인 페트라는 말한다.
"동독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배신해야 해요. 그게 문제죠. 하지만 자기 혼자 생존하기 위해 남을 배신하는 행위는 곧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죠" (p.201).
<곡성>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끊임없이 속고 속인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혼동하는 토마스처럼 독자들의 머리도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 토마스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만다. 바로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힘으로 치유해주겠다고 말하던 여자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않은채 비밀경찰단에게 넘겨준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수많은 방황과 도피를 마친 후 실마리를 풀게된 토마스는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미워한다. 한편으론
그런 짓을 저지른 자신을 미워할 페트라에게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할지 몰라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페트라의
오래된 편지와 일기속에서 페트라는 토마스가 아닌 자신에게 잘못을 돌린다.
"내 스스로 행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이 책은 지난날에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에 대한 후회가 깊게 스며든 책이다.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결말은 희망차다. 비록 사랑은 잃었지만 앞으로 살아가야할 희망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를 부정하기보다
과거를 끌어아는 법을 조심스레 알려준다. 결국 현재의 이 모든 순간은 과거로 수 많은 선택들로부터 이어져온
순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쨋든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p.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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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