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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글쓴이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획
나무연필
평균
별점8.8 (5)
quartz2

2016년 5월. 하나의 죽음이 발생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은 늘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경악했다. 2016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새벽 1시라는 늦은 시각에 집도 아닌 상거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을 주목한 반격도 있긴 했다. 왜 그 야심한 시간대에 집에 가질 않고 여자가 밖에서? 하지만 대다수는 두려움을 느꼈고 분노했다. 사건 장소에서 그리 머지 않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의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쌓이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동안 둑 안에 갇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사람들은 제 안의 수많은 메시지를 동시에 털어놓았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우천으로 인한 훼손을 막고자 철거가 예정된 포스트잇을 주목했다. 사라지고 말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기록으로 남기고자 애썼다. 이 또한 가치를 지닌 역사이다. 별도의 주석을 달거나 하진 않았고, 이왕이면 원문을 그대로 담고자 노력했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단어는 '여성혐오'였다. 사건은 어떠한 원한 관계도 맺은 바 없는데 발생했다. 범인은 앞서 화장실을 이용한 남성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로지 여성만을 타깃으로 노렸는데, 상대 여성이 어떠한 직업을 가졌으며 나이가, 취미가 무엇인지 따위는 중요할 리 없었다.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어 그랬다는 식의 변명은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마도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에게조차' 무시당하는 걸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머릿속 깊은 곳에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여야만 하고, 남성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라야만 한다는 사고가 박혀 있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의식을 반하는 듯한 여성의 태도는 혐오스러운 나머지 죽어 마땅한 것에 버금갔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런 본질을 인식했다. 사회에 그간 만연했으나 공론화되진 못해온 여성혐오를 논하자며 매달렸다. 왜 사건이 발생했는데 가해자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지 그들은 물었다. 화장실에서 살인을 계획한 이를 부르는 명칭은 없는데 억울하게 죽어간 여성은 '화장실여'가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어처구니 없어 했다. 단지 언어의 문제인 것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그동안 탄생해온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의 시선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살아 있음에 대해 강한 죄책감을 느꼈다. 죽음이 우연이듯 자신의 생도 우연이라는 식의 사고가 담긴 표현들이 포스트잇에 많이 담겼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에는 왜 내가 아닌 네가 희생양이 되었는가를 설명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느끼고 있는 죄책감이 많이 느껴졌다. 남성들의 표현으로 보이는 '잠재적 가해자' 또한 비슷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나 자신도 모르게 지녀온 여성혐오의 관점, 여성비하적인 발언 등에 그들은 급작스레 눈뜨고야 말았다. 여성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식의 사고 또한 잘못된 것이겠지만 많은 남성들은 죽은 여성이 나의 어머니이자 아내, 딸 등이 될 수도 있음을 인지했기에 기꺼이 미안해했다. 

사라진 삶, 시들어버린 꿈을 애도하는 목소리 중에는 사건이 존재치도 아니 하는 여성혐오를 부각시키며 오히려 남성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식의 우려도 존재했다. 조금 더 거칠게, 애도 자체를 무시하고 욕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회의 정의는 최약자의 파이가 가장 클 때 성립 가능하듯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지나치다 싶을 수도 있으나 남성의 관점을 배제한 채 여성에 집중하는 게 옳다는 지적을 곱씹어본다. 늘 동시에 존재해온 남성과 여성, 허나 우리는 늘 남성이 인류를 대변한다 믿어왔고 남성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여 왔는지도 모른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힘을 쏟아야 들린다. 일어나지 말았어야만 하는 사건이나,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 수면 아래 억눌려 있던 여성의 목소리를 비로소 사회가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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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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