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소설

딱딱한푸딩
- 작성일
- 2016.10.5
종이달
- 글쓴이
- 가쿠타 미쓰요 저
위즈덤하우스
돈이면 거의 무엇이든 만능으로 얻을 수 있는 시대, 그것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사는 인간은 끝없는 욕망을 억누르거나 표출 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역시 인간이기에 양극에만은 치닫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몸부림을 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은 내면에서 점점 더 큰 형상을 만들어내고, 급기야 그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게도하여 이성이란 훌륭한 것을 가진 인간을 맘껏 흔들어대다가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정신을 차린다해도 너무나 아득하여 돌아갈 용기조차 빼앗아버리는 이것이 욕망이다.
나는 우메지와 리카의 욕망과 종이달의 연결점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헛된, 훅 불어버리면 날아가버리는 그런 얇은 종이로 만든 달이 오래가길 바라는 그녀의 불가능한 바람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하던 때에 옮긴이의 글을 통해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인 친구가 '종이달'에는 이런 의미도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사진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절, 사진관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가짜 달을 보며 찍었는지, 달 모양 위에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껏 포즈를 잡으며 행복한 얼굴로 가족 혹은 연인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종이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달이었던 것 같지만, 거기에서 비롯되어 '종이달'이라고 하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종이달'은 너무나도 이 소설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종이달'과 '가짜'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중의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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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너무나 위험한 발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멋진 제목이다.
달을 가질 수 있다는 무모한 욕망이 조금씩 이성을 얇게 다지기 시작한다. 그 첫 움직임은 너무나 미묘하여 대수럽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을 무시하며 한 발씩 내닫음을 반복하는 어느 순간, 달이라는 것도 가질 수 있다는 무모하고 잘못 된 이성은 욕망과 한패가 되어 점점 커지며 괴물로 변한다.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변화, 달고 단 꿀물이었던 그것은...
서서히 독약으로 변하여 목으로 넘길 날을 정하고 있는 듯이 서서히 옥죄어 온다.
리카는 소비자금융에서 돈을 빌리며,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뭔가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알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발을 들이밀고 있는 터무니없는 사태에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택 대출금은 이제 없다. 그걸 내던 금액, 월급의 일부를 계속 갚으면 언젠가 '빌린'돈은 모두 갚을 수 있다고. 그러나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이때 막연히 생각했다. 이미 자신이 얼마를 썼는지, 얼마를 갚으면 되는지 알지 못했다.
돌아갈 수 없다면 나아갈 수밖에 없다. 리카는 생판 남 일처럼 생각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리카는 그 찌는 듯이 더운 날을 떠올렸다. 화장품을 사느라 일시적으로 5만엔을 빌린 순간을, 점원에게 감사인사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잇따라서 떠올렸다. 이때부터 그야말로 리카에게 금액을 적은 숫자는 뭔가 의미 있는 돈이 아니게 되었다. ...
돈이라는 것은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 있으면 그것은 1만 엔이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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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지와 리카에게도, 오카자키 유코, 주조 아키, 야마다 가즈키에게도 각자의 마음 속에 멀쩡한 달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삶이 그것을, 어느 날의 그들을... 건드려 놓았던 것이다.
어느 날은 포기를, 어느 날은 수용을...을 반복하다가 각자의 현재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욕망의 본성은 꺼내어 놓으면 리카의 그것처럼 종이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크고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그것이, 어느 날부터 그토록 바라왔던 대단한 것으로 더는 느껴지지도 않게되고, 그에 종속되어있던 것들마저 한꺼번에 무너져서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그저 흩날려져버리게 되는...
네온사인과 불꽃이 어슴푸레하게 물든 밤하늘이 펑펑하는 굉음과 함께 덮쳐와, 천천히 자신을 짓누르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리카는 얼른 고타의 손을 잡았다. 고타는 리카에게 손을 잡혔지만, 맞잡지 않았다. "불꽃 너머에 달이 있어요." 고타가 불쑥 말했다. 정말로 깎은 손톱처럼 가는 달이 걸려 있었다. 불꽃이 떠오르면 그것은 사라지고, 불꽃의 빛이 빨려들 듯이 사라지면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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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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